나는 누구에게도 희망을 말해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희망은 모두 진실이 아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절망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절망 또한 모두 거짓과 다름없었다
앎 밖으로 쫓겨난 시간
숲과 강과 바다와 하늘의 장대한 숨결 앞에서
생각의 마디마디가 흩어져 갔다
내가 보고 들었던 수많은 것들은
물 위로 일렁이는 빛 그림자에 불과했다
거대한 세상조차 부글거리는 거품과 같았다
내가 알게 된 유일한 것은
사람이 생각해낸 것은 모두 부서져 사라진다는 것
그저 기쁘라
애초에 희망과 절망의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굳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주말.
강추위 예보와 함께 소리 없이 눈이 내린다.
새색시같이 고운 첫눈이다.
그러나 캐럴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성탄절.
바이러스 감염으로 모임조차 어려운 축제.
높게 쌓인 성벽이 무너지는 대재난 속의 길일.
그동안 지녀왔던 희망과 절망이
진정한 소망에 대한 것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