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더니
가을의 장막이 걷히고
코끝 찡한 아침이 문밖에서 기다립니다
벌판의 꽃대궁과 가시덤불은
잔뜩 움츠린 채 흰 서리를 덮어 쓰고
간밤에 지나간 한 사내의 발자국이
흙바닥에 문신처럼 새겨졌습니다
그리움도 사람의 일이라
계절이 지나면 잊힐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회색 하늘은
마른 잎으로 접어두었던 기억을 펼쳐내고 맙니다
오래됨과 새로움이 얼굴을 마주 대하는 오늘
묵은 사진을 대하자
참았던 흰 눈이
기어이 마음 강 위로 펑펑 내려앉습니다
* 대설인 오늘, 눈비 소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언젠가 찬 바람이 불었고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지금도 극지방 어디엔가는 눈보라도 날리겠지요.
계절로 기억하는 지난날.
추억의 땅 끝에서 흰 눈을 맞이합니다.
(눈 내린 사진은 지난 어느 해의 겨울에게서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