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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an 11. 2022

눈 오는 밤의 전화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밤중인 12시에 창문을 열어보니 아래 길바닥이 젖어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보니 무엇인가 차금 차금 살갗 위내려앉는 것이 느껴집니다. 짧은 순간 지나가는 차 불빛에 하얀 눈이 나타납니다. 

지난 이틀 동안 전국이 미세먼지의 회색 장막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기관지가 약해서 가슴이 몹시 답답하고 머리까지 아팠기에 반가운 마음이 니다. 문만 열면 맹렬히 돌아가던 공기청정기도 잠잠합니다.

북극의 찬바람이 탁한 공기를 밀어내 맑은 날씨가 되었지만 또 추위를 견뎌야 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듭니다.


문득 소리 없이 내리는 이 밤의 눈 소식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핸드폰의 연락처 목록을 훑어보니 세 사람의 번호가 눈에 들어옵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는 늦은 시간이기에 지금 눈이 온다라문자만 보냈습니다. 늦게까지 깨어있곤 하는 두 번째 사람에게 혹시나하는 마응으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음만 길게 이어질 뿐입니다. 번째로 허물없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참 후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응, 왜?

- 아, 잤어?

아니, 자려고.

- 밖을 좀 봐. 눈 온다. 

넌 왜 글케 눈을 좋아하니? 눈이 얼마나 더러운 건 줄 알아?

- 아니 왜 이리 심사가 꼬였어? 또 주식이 내려갔나?

에잇, 몰라. 

- 알았어. 낼 보자. 


이미 오늘이 되어버린 약속 날짜. 갑자기 남이 걱정스러워집니다. 결국 얼굴에 찬바람을 맞으며 홀로 눈을 바라봅니다. 

몇 시간 후 새벽길에 얼어붙은 눈은 사람들의 원성을 듣겠지요. 눈이 계속 내린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새벽에 모두 일어나 눈을 치우던 예전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겨울엔 으레 눈이 자주 쏟아졌고 처마엔 긴 고드름이 자랐지요. 아침 햇살에 투명하게 비치며 반짝이던 얼음 가지를 떼내어 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시원함은 지금의 얼죽아와는 비교가 되질 않지요. 

눈사람은 마당과 골목마다 서 있었고 어디선가 눈덩이가 날아오곤 했습니다. 밤이 되면 추위도 잊은 듯 골목길에 메밀묵 파는 소리가 구성지게 울렸습니다. 그렇게 겨울밤은 깊어갔온돌방 아랫목에서는 김장무를 깎아 먹거나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자식들의 입이 심심할까봐 항상 무엇인가를 챙겨주셨죠.아버지는 밤늦게 종종 군밤을 사들고 들어오셨습니다. 사랑방의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늦은 귀가에 큰기침을 여러 번씩 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추억 속에만 살아계신 분들입니다.


눈은 기억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요.

창가에, 담장 위에, 마당에, 문 앞의 신발 위에도 말없이 내려앉던 눈은 사람들의 모든 사연을 알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 눈을 호젓이 맞이하는 것도 나쁘진 않군요. 때로는 눈이 사람보다 믿음이 갑니다.

적어도 눈만이 목격한  이야기를 함부로 퍼뜨리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흰 눈을 바라보며 부끄러운 일까지 가만히 되새겨 보게 됩니다.



* 사진은 지난겨울의 풍경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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