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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un 23. 2022

슬픈 일만 모두 모아


기왕이면 슬픈 일만 내게 주렴


첫날의 기쁨일랑 지워 버리고

쓰디쓴 오이 꼭지처럼

뱉어내고 싶은 기억만 내게 다오


다음에는 아주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무너지는 것은 더 쉬워졌어

흙벽으로 세운 사랑이기에


새벽안개로 지탱하는 하루

뿌연 장막이 걷힐 때마다 두려웠지


쨍쨍한 한낮은 인고의 절정


가뭄이 길었는지

깊어만 지던 우물도

마침내 펌프질을 거부했어


메마른 낮을 조문하고

밤을 더 검게 칠하려면

슬픈 일 한가지로치장해야 


넋 나 가슴아

날카롭게 조각난 슬픔만을 품으렴






* 지난밤, 박정만 시인의 <슬픈 일만 나에게>가 조용히 카톡방으로 찾아왔다.


슬픔은 시인의 숙명 같다.

아니 사람의 그것이겠다.

하루 지나니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보내준 이에게 또 한 편의 시가 위로가 될지 아니면 쓸모없는 끄적임이 될지는 미지수다.


장마를 알리는 첫 비를 맞으러 나갔다.

비가 오다 그쳤다를 반복하며 먼 산 위로 운무가 피어오른다.

사람의 일도 오늘처럼 늘 한결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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