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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Dec 05. 2019

             어린 날의 동화

                           위로의 다락방

오래된 책들을 버리려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너덜너덜해지고 색이 바랜 동화책을 하나 발견했다. 어린 시절에 읽던 전집에 포함되어 있던 책인데 15명의 아이들이 무인도에 표류되어 살아가는 모험을 다룬 이야기였다. 책장 정리하던 것은 까맣게 잊고 바닥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친구를 사귈 만큼 한군데 오래 살지 못했던 환경적인 탓도 있겠지만, 태생적으로 낯가림을 많이 하는 성격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는 입이 경직되는 것만 같았고, 쭈뼛거리면서 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친구가 거의 없었고, 다른 아이들이 서로의 집으로 몰려다니며 놀 때 집에서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우리집은 다락방이 있는 이층짜리 단독주택이었는데, 어른은 머리를 들고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삼각형의 나지막한 그 방은 나만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집안의 허접한 물건들이 여기 저기 놓여있는 사이에서 읽은 동화책들은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존재였다. 그 방에서 나는 전집으로 된 세계 명작을, 그림과 그 옆에 쓰여진 글자까지 훤히 외울 수 있을 만큼 보고 또 보았다. 나는 피터팬이나 파랑새 같은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사는 네버랜드에서 팅커벨 같은 요정들과 날마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치르치르와 미치르 형제가 만나게 된 파랑새가 내 앞에도 나타나주기를 꿈꾸기도 했다. 동화책을 손에 들고 있는 순간은 나는 친구 없는 외로운 아이도 아니었고, 조그마하고 볼품없는 아이도 아니었다.  


자라면서 기억에 없는 어느날 자연스럽게 동화책을 손에서 놓게 되었을테고 그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사람에게서 세상에게서 또는 나 자신에게서 상처받은 순간들을 한 번도 제대로 아파하고 보듬어 보지 않으면서 지나왔는데 책장에 등을 대고 낡은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여리고 상처 많은 나의 진솔한 맨얼굴이 드러났다. 슬프지도 않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계속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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