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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Jan 28. 2021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증언들』, 마거릿 애트우드

  전쟁과 환경 오염으로 인한 혼란의 틈을 이용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길리어드라는 국가가 있다. 길리어드의 여성들이 가장 먼저 당한 일은 은행 계좌의 거래가 정지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으며, 이름과 가족을 빼앗겼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남성인 아버지나 남편의 지위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며, 지적인 모든 활동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여성은 ‘아주머니’로 불리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글자를 익힐 수 없으며, 아내나 시녀, 혹은 하녀가 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여성은 처벌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길리어드는 출생률 감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가임기의 여성 중 그들의 기준으로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판단되는 여자들을 징발하여 시녀라는 계급으로 분류하고 아이를 필요로 하는 가정에 배급한다. 

  『시녀 이야기』는 길리어드라는 남성 지배 전체주의 체제 내에서 시녀가 된 오브프레드의 시련과 임산부의 몸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이다. 『시녀 이야기』는 여성의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남성에 대한 절대복종만을 요구하는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전체주의 세계를 탁월하게 묘사하여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전 세계를 매료시킨 『시녀 이야기』가 출간되고 34년만에 그 후속작 『증언들』이 출간되었다. 『증언들』은 전작 『시녀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에서 15년이 지난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한다. 시녀 오브프레드의 수기 형식인 『시녀 이야기』와 달리 『증언들』은 아그네스의 증언 녹취록 369A, 제이드의 증언 녹취록 369B, 리디아 아주머니의 비밀 기록인 아르두아 홀 홀로 그래프가 교차하는 구성이다. 

『증언들』에는 리디아 아주머니, 아그네스, 제이드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길리아드의 초창기에 전직 판사 출신의 리디아 아주머니는 비인간적이며 잔혹한 집단 수용 시설에서 살아남고, 아주머니의 계급이 되었다. 저드 사령관의 신임을 얻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길리어드의 눈을 속이며 그들의 비인간적이며 추악한 실상을 폭로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아그네스는 법적으로는 사령관의 딸로 저드 사령관과 정략 약혼을 한 상태이지만 리디아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아주머니의 수련을 받게 된다. 캐나다의 제이드는 부모가 차량 폭발로 사망한 뒤 자신이 그들의 친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자신이 길리어드에서 빼돌려진 아기 니콜이라는 사실과 부모가 생전에 비밀 조직의 요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길리어드에 잠입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제이드는 아르두아 홀에서 새로 들어온 신도들(새로운 진주들) 무리에 끼어 길리어드의 여자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아그네스와 제이드가 시녀 오브프레드의 이부(異父)자매임을 밝히고 캐나다로 길리어드의 실상을 폭로할 정보를 이송하라는 임무를 준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길리어드를 탈출하고, 리디아의 정보를 세상에 공개한다.      


  아그네스와 리디아 아주머니에 의하면 길리어드는 여성들에게 미덕과 순결을 강요하며 ‘눈’의 감시 하에 체제를 공고히 유지하려 하지만 내부는 썩어 가고 있었다. 자신의 어린 딸 뿐 아니라 치과 검진을 받으러 온 어린 소녀를 추행하는 베카의 아버지, 다른 사령관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아그네스의 양아버지, 아내를 살해하고 어린 새 아내를 맞아들이는 일을 거듭하는 소아 성애자 저드 사령관 등 지배 세력의 부패와 타락은 길리어드의 체제 붕괴를 초래한다. 작가가 감사의 말에 쓴 것처럼 “전체주의는 집권 과정에서 한 약속을 계속 어기는 과정에서,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탁월한 거장이 구성해 놓은 스릴러의 형식은 단숨에 600쪽 분량의 소설을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2019년 『증언들』을 부커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심사위원장 피터 플로렌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준다”고 평하였다. 길리어드와 같은 기형적인 체제가 비단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조혼이나 대리모 문제는 아프리카나 인도 등의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며, 여성에 대한 불평등은 제3세계 만의 문제는 아니다. 길리어드와 같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전체주의적 집단이나 체제는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266. 친구를 가까이 두되 적은 더욱 가까이 두라. 친구가 없는 나는 적들의 힘을 빌려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 한다.     


  리디아는 기회만 되면 자신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비달라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는 척, 유연하게 대처하며 표면적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길리어드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고 준비하며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이다.      


361. 모든 것은 기다리는 여자의 차지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뒷굽은 닳는다. 인내심은 미덕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이 고색창연한 지혜의 말들이 언제나 진실인 건 아니지만 가끔은 맞는다. 여기 언제나 맞는 말이 하나 있다. 모든 건 타이밍에 있다. 농담이 그렇다.     


  자신의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후일을 도모하는 자가 다 그렇듯 리디아는 강하고 지혜로우며 절제할 줄을 안다. 멋진 결정타를 위해 힘을 아끼며 내공을 쌓는다.          


451.  쟁여 둔 무연 화약을 끌고 길리어드의 토대 밑으로 이만큼 터널을 파 들어왔는데, 여기서 비슬거릴 것인가? 나는 인간이므로,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경우 나는 내가 이토록 힘겹게 쓴 이 페이지들을 파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신도 파괴해야 할 것이다. 내 미래의 독자여, 성냥불을 화르르 붙이면 당신은 사라지리라. 한 번도 존재한 적 없고, 영영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싹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내가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리라. 얼마나 신과 같은 기분인가! 절멸의 신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흔들린다. 나는 흔들린다.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     


  글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글을 읽을 미래의 독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리디아 아주머니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녀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고, 길리어드는 멸망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성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결말을 미리 알리고, 그 과정을 화자의 시선으로 따라가게 하여 마치 독자 자신의 회고록인듯한 일체감과 몰입감을 준다.      


521.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여자는 의무를 다하는 길을 통제할 수 없다. 분노의 물결과 맞서 싸우려 들지 말고 분노를 연료로 활용하라. 숨을 들이쉬어라. 숨을 내쉬어라. 옆으로 한 발 비켜서라. 우회하라. 굴절하라.      


  아르두아 홀에서 순종적인 여자를 길러내기 위해 가르치는 자제력은 불의에 저항하며 도전하는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564. 시계가 똑딱이고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기다린다. 나는 기다린다.
무사히 날아가라, 내 연락책들, 내 은빛 비둘기들, 내 파멸의 천사들이여. 안전하게 착륙하길.     


  리디아는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길리어드의 실상을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인내하고 숨죽이며 기다려 왔다. 한 방의 결정타를 위해서. 강인한 인간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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