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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Dec 12. 2020

위로가 필요한 날 찾아가고 싶은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아일랜드 서점’은 메사추세츠 주 남쪽에 있는 앨리스 섬의 유일한 서점이다. 이곳의 주인 에이제이 피크리는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서점에 구비하는 책도 철저히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들뿐이다. 에이제이는 아내와 함께 아내의 고향인 섬에 들어와 서점을 운영하던 중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아내가 떠난 후 서점의 운영은 점점 힘들어지고 밤이면 술을 마시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에게 가장 큰 재산은 에드거 앨런 포의 희귀시집이다. 그의 은퇴자본이었던 포의 시집을 도난당하면서 서점을 정리하려던 꿈은 실패한다.  어느 날 밤 서점에 미혼모가 버리고 간 아기가 등장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진다. 버려진 아기 마야와 가족을 형성하고 살아가면서 그는 긍정적이며 따뜻한 사람으로 변화한다. 에이제이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면서 서점은 작은 섬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자신과 거래하는 출판사의 영업사원인 아밀리아와 가정을 꾸리고 세사람은 행복한 가족으로 살아간다.


   전반적으로 평이한 줄거리인 듯 하지만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반전이 느슨해진 독자를 긴장시키기도 해서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내 인생은 이 책들안에 있어, 그는 마야에게 말하고 싶다. 이 책들을 읽으면 내 마음을 알 거야.


  1, 2부로 구성된 소설 각 챕터의 앞에는 에이제이가 주로 딸 마야에게 추천하는 작품에 대한 추천사가 실려있다. 에이제이의 취향에 의해 선정된 작품들에 대한 코멘트와 책의 구절을 소개하는 이 부분은 소설 전체의 서사를 읽어가는 재미와는 또 다른 지적인 즐거움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왠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니야 잡화점의 기적이 떠올랐다. 평범한 사람들이 따뜻하게 배려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는 읽고 난 후의 여운이 오래 간다. 잔잔한 울림이 커다란 함성보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더 큰 법이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야와 피크리, 그들을 지지해주는 이웃들의 사랑은 책을 읽는 내내 독자를 행복하게 한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혹독한 겨울날,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는 가슴 시린 날 펴들기에 딱 좋은 책이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는 한, 그저 사랑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진정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


  죽어가는 에이제이가 마야에게 유언처럼 남기는 이 말은 가족으로 살아가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한 남자의 자기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에이제이의 인생을 압축한 문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떠나도 그가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헤어짐은 단순히 현상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이다. 마야는 에이제이가 의지와 다르게 발음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에 손이 시리냐며 자신의 손을 포갠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체온을 나누는 행위로 그들 부녀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작가는 세심하게 형상화하여 감동을 자아낸다. 앙상해졌을 에이제이의 손등에 젊고 통통한 마야의 손이 포개지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잘 모르겠어, 이즈메이. 있잖아,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에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학창시절 읽기를 못한다는 선생님의 지적 이후 독서에 대한 흥미를 갖지 못했던 경찰관 램비에이스는 에이제이와 마야를 만나고 그들의 삶에 끼어들게 되면서 독서의 재미를 경험하게 된다.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그는 경찰들의 독서모임을 만들어 이끌게 되고 책과 서점을 사랑하게 된다. 

  램비에이스가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을 하는데 어려서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강요에 의해 재미없는 책을 읽고 타의적으로 독후감을 써야 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책을 읽고, 혹은 교사와 학생이 같은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느낌을 공유하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문화가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다. 부디 책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아가는 사람이 늘어나서 가벼운 책이건 심각한 책이건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앨리스 섬의 작은 서점의 북클럽 같은 독서모임이 늘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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