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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Nov 15. 2020

나는 다시 태어나는 거야

 - 『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마이애미에서 스페인어와 정치학을 공부하던 아비바 그로스먼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하원의원 애런 레빈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 부모뻘인 하원의원에게 빠지고,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간다. 하원의원의 불륜 사실은 둘이 함께 탄 자동차가 사고를 당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아비바가 블로그에 하원의원과의 일을 기록해 둔 것이 드러나며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사람들은 르윈시키와 비교하며 하원의원을 동정하고, 그는 재선에 거듭 성공하며 정치가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간다. 아비바는 마이애미에서는 취업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운신조차 할 수 없게 되고 어느 날 사라져 버린다.

 개명을 하고 메인주에서 딸을 키우며 제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다가 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과거 아비바로서의 삶이 상대 후보에 의해 드러난다.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제인의 딸은 엄마의 비밀을 신문사에 폭로하고 아버지로 추정되는 하원의원을 찾아 가출을 감행한다. 제인이 가출한 딸을 찾는 과정에서 아비바와 엄마 레이철, 그리고 딸 루비와의 갈등이 해소된다.      




  소설은 아비바의 엄마 레이철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비바와 관계있는 다섯 명의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사건 을 전개한다. 유대인 학교 교장에서 하루 아침에 불륜 스캔들 주인공의 엄마가 되어 직장을 그만 둔 레이철, 불륜의 상대인 하원의원은 여전히 승승장구하지만,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의 표적이 되어 일상적인 삶이 무너져 가야 했던 아비바,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싱글맘 제인, 엄마 제인의 과거를 알고 혼란에 빠져 엄마를 미워하게 된 루비, 자신을 배신했던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며 암환자임에도 끝까지 남편을 내조하는 엠베스, 그리고 다시 아비바로 시점이 옮겨지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치인의 불륜 스캔들, 그로 인해 삶이 망가져버린 여자의 이야기라는 소설 속 상황은 어둡지만,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들의 모습을 통해 개브리얼 제빈은 따뜻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이들의 일상은 주로 유쾌하고, 때로 절망에 직면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으며 서로 연대하여 힘을 모아 다시 살아간다.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내가 가던 길을 계속 갔지.    


 소설 속에서 정치인과의 스캔들이 터진 후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히고, 신상털이를 당하는 여성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는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성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여성은 유독 비난을 피하지 못하며,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여성의 평소 품행을 문제 삼고,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며, 2차, 3차의 피해를 입게 된다. 소설 속 불륜의 상대인 하원의원 레빈은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재선에 성공한다. 자신의 아내와 가족을 배신하고 스캔들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 인생에 어떤 치명타도 입히지 않는다. 

《비바, 제인》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여성에게만 돌을 던지는 세상을 단지 원망하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여타의 소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더이상 숨기려 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며 당당하게 딛고 일어서려는 용기를 발휘하는 대목에서 제인은 비로소 새롭게 태어나는 것임을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설혹 지독한 절망의 현실에 맞닥뜨리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끌어안고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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