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못생긴 여자라면 그래도 절 사랑해줄건가요?”
이 책은 신혼 시절 작가의 아내가 던진 “제가 못생긴 여자라면 그래도 절 사랑해줄건가요?” 라는 질문을 화두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의 다른 남자와 똑같았길래 선뜻 글로 옮기지 못하다가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답을 찾았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가장 못생긴 작가가 쓰는 가장 못생긴 여자를 위한 선물’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작가 박민규는 미국 만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활약상을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를 폭로한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 최약체 구단 중 하나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소재로 삼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단편집 『카스테라』,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이르기까지 감각적이고 유쾌하기도 한 문장 스타일과 독특한 글의 구성 방식, 문장의 중간에서 단락을 변경하는 등의 형식적인 파격과 함께 재치 넘치는 표현, 기발한 착상, 그리고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된 ‘루저’들에 대한 치밀한 관심과 그러한 소외를 야기한 현대 사회를 향한 비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무명 배우로 전전하다가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된 잘생긴 남자였고, 어머니는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못생긴 여자였다. 아버지가 부유한 여자를 만나 '나'와 어머니를 떠난 후 어머니는 슬픔과 절망 속에 삶을 이어가다가 이모가 살고 있는 강릉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열 아홉 살의 재수생인 '나'는 서울에 혼자 남아 살아가다가 친구의 소개로 백화점에서 주차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인생의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에게 정신적 스승이 됐던 냉소적인 요한, 너무나 못생겨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던 그녀가 그들이다. '나'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요한이 둘이 자주 가던 맥주집에 그녀를 초대하면서 그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풋풋한 사랑을 이어가다가 '나'의 대학 입학으로 자연스럽게 요원해지게 된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커다란 아픔을 지닌 요한은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게 되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의식 불명의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녀는 외모로 인한 사회적 소수자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백화점을 그만두고 '나'의 곁을 떠난다. '나'는 학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 주차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게 그곳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알게되고 그녀가 사는 곳을 찾아가 본 후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두 사람은 겨울날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와 만나고 돌아오던 '나'는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회복된 후 성공적인 작가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녀의 연락처를 수소문하다가 독일에서 간호사를 한다는 그녀를 찾아가 다시 만나게 된다.
'나'의 사고 이후에 작가는 각각 다른 결말을 두 개의 결말을 준비한다.
울어도 좋을 것 같은 캄캄한 방이었지만, 아무리 울려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죽을 태운 냄새가 방안까지 스며든 느낌이었다. 또 그런 착각이 들 만큼이나... 마음이 타는 냄새는 그와 흡사한 것이었다. p. 44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마음 속에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큰 흉터를 남긴다.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남편,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상처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 다 타버리면 미워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재가 되어 사라질까....
어릴 때의 기억과.... 주변에서 전해들은 아버지의 과거 ... 혹은 그때그때의 기억과 대화... 즉 그런 것들이 내가 아는 아버지의 전부일 뿐이다. 어머니나 이모라면 또 전혀 다른 아버지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것이 내가 아는 아버지의 전부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內面)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p. 45
내가 너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어. 때로 나도 나를 모르는 걸. 내 마음 속에도 얼마나 큰 내가 있는지 나도 알 수 없어. 언제나 한결같은 자아가 가능할까, 아니 마음이라는 것이 고정된 형태로 있기는 할까.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p. 185
네가 나를 사랑해주면 나도 빛날 수 있어. 사랑을 하면은 예뻐지는 거라잖아.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p. 300
이별 이후에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하던 일들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닌 것이 되었다는, 그래서 내 삶의 패턴을 바꿔야한다는 것을 깨달음이다.
【내 생각】
이 책은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부와 아름다움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고 욕망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시한 세계를 시시하게 볼 수 있는 네오 아담과 네오 이브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탄생한 인물들이 바로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그 어떤 권력보다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힘이 사랑이라는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때로 지나치게 파격적인 형식적 특성들, 예를 들면 느닷없는 문단 나눔 같은 부분이 아직까지 글에 대한 고지식한 편견을 가진 나에게 불편함과 거슬림으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재미있고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의 등장인물의 모습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아닐까.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읽고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