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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Aug 23. 2019

우리, 함께 갈 수 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고양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반려동물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 구조 속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좌충우돌, 천방지축이거나 도도하고 시크한 모습, 인간과 한 발 떨어져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고양이의 모습과 달리 뇌에 삽입된 USB 단자로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인간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똑똑한 고양이 피타고라스. 끝없이 타자와의 소통을 꿈꾸며 존재론적인 사유를 하는 바스테트가 그들이다.

 자존감이 높은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첫인상부터 남다른 샴 고양이 피타고라스의 해박한 지식에 매료된다. 그를 통해 인간과 고양이의 역사를 배우게 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테러와 내전이라고 하는 폭력의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인간 사회는 죽고 죽이며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되고, 황폐해진 도시에는 페스트가 급속도로 번진다. 인간들이 쥐떼가 넘쳐나는 도시를 피해 도망치며 버리고 간 고양이들은 쥐떼에게 몰려 숲 속에 은신하게 된다. 테러범의 습격 와중에 잃어버린 자식을 찾다 이들과 만나게 된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고양이 무리를 설득하고 인간과의 소통에 힘겹게 성공하여 섬으로 피신한 후 인간과 함께 쥐떼를 물리치게 된다.

 작가가 그려낸 인간 세상의 모습은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드러나는 우리의 맨 얼굴이다. 작품 곳곳에서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가슴이 뜨끔해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열다섯 살짜리 강아지와 함께 사는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미용이라는 명분하에 강아지의 털을 밀어버리고,피로와 피곤을 핑계로 주말에 한 번만 산책을 하며, 강아지의 건강을 위한다는 핑계로 사료를 제한적으로 주기도 한다. 나의 반려견은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성화 수술을 하였으며, 자신의 취향과 무관하게 털을 밀리고, 평생 혼자 빈 집에서 지루하게 주인을 기다린다. 무작정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그들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집에 가면 반기는 강아지를 안아주고, 보상으로 간식을 주고난 후 강아지의 고독과 지루한 기다림은 바로 잊어버린다. 간혹 TV에서 버려진 동물의 아픔을 보며 눈물 흘린 후 곧 잊어버리듯.

그런데 여주인공 바스테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인간에 대한 비난의 말은 내 가슴에 아프게 박힌다. 누군가 나에게 평생 고독하게 기다리고만 있으라고 하면 나는 얼마나 지루하고 괴로울까, 나의 자유를 박탈하고, 나의 견해를 고려하지 않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자행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반려 동물과 가족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온 내 모습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모습은 아니었을까? 비록 극단적으로 약자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거나 생명에 위협을 가한 적은 없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철저히 내가 우위에 있는 모습은 아니었을까? 이렇듯 소설 『고양이』는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말에 자주 보는, 동물을 소재로 한 프로에서는 버림받거나 학대받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동물의 이야기가 종종 소개된다. 유기견이나 유기묘는 이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흔해졌다. 즉흥적으로 동물을 키우기 시작하고 책임감을 발휘해야 하는 때가 오면 냉정하게 버리는 매몰차고 이기적인 우리 인간들을 여주인공 바스테트는 믿고, 더불어 살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추악하고 근시안적인 면과 비교할 때 그들의 관용과 깊은 사랑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공생(共生), 이것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키워드라고 고양이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면서 우리 인간에게 머지않아 닥쳐올지도 모르는 파멸의 날을 피하기 위한 해결의 열쇠는 소통에 있다. 소통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타자(他者)와 더불어 살 수가 없다. 가정폭력, 학교폭력을 비롯한 개인과 개인의 갈등, 개인과 집단의 갈등, 집단과 집단의 갈등은 소통불가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사춘기 아이를 키울 때 나와 아이는 서로 대화가 안된다며 끝없이 악을 쓰고 싸웠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는 안 되어 있고, 내 이야기를 하기에 급급했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왜곡해서 듣기가 십상이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나 또한 나이를 먹어 관용이 생기게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 바스테트는 소통에 집착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다른 종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지만 상대의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때때로 성난 상대를 자극하는 오해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녀는 결국 자신과 소통가능한 인간을 만나게 되고 극적으로 이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의 최고의 관심사였던 소통,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소통을 통한 공존과 공생, 거창하게 인류의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이 갈등과 긴장을 완화시키고 공포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경우를 바로 우리는 자신에게서 보았다. 끝없이 우리 국민을 전쟁의 공포에 떨게 하던 한반도의 정세가 남과 북 양측의 대화를 위한 노력으로 변화하고 급기야 두 지도자가 나란히 군사분계선을 넘던 감격적인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베르나르베르베르가 묘사한 인간의 현실은 폭력이 난무하는 부정과 불신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인류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그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인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결국 함께 가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다. 소설 『고양이』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애정을 갖고 있는 작가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그래서 얇은 두께임에도 시간을 들여 오래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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