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라는 책이 있다. 주인공 동그라미는 이가 빠져서 자신의 조각을 찾아다닌다. 완전해지고 싶은 마음에 길을 떠난 동그라미는 갖가지 고난을 겪게 되지만, 그 덕에 벌레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꽃의 향기를 맡기도 한다. 이가 빠져 빨리 구를 수 없다 보니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모습을 소망하는 동그라미는 계속 짝을 찾아다닌다. 몸에 맞지 않는 이런저런 조각들을 만나며 시행착오를 겪다가 마침내 잃어버린 짝을 만나게 된다. 제대로 원을 이루어 드디어 빨리 구를 수 있게 된 동그라미는 일상의 자잘한 기쁨들은 모두 포기해야 했다. 빈틈이 없어 노래조차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동그라미는 찾은 조각을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
동화지만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네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완전함이 오히려 주변의 사소하고 자잘한 행복을 느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부족함 속에서 완전함을 향해 갈 때 오히려 행복을 느낀다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어려서는 그저 재미있는 우화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나이를 먹으며 자주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기를 쓰고 짝을 찾아 나서는 동그라미는 내 젊은 날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사실 나는 아무 재주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는, 부족한 게 넘쳐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몸집이 왜소하고 외모도 출중한 편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보잘것없는 내 삶이 싫어서 누구보다 부지런을 떨고 극성을 부리며 살아왔다. 돌아보면 젊은 날의 나는 늘 인상을 찌푸리고 화난 듯한 표정으로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경쟁상대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행운과 성취에는 진심어린 축하를 했던 적이 없다. 그들의 성공을 보고 배울 점을 찾기보다는 속으로는 시샘하고 질투하기에 바빴다.
나는 완벽하고 싶었다. 완벽한 딸, 완벽한 엄마, 완벽한 직장인으로 내게 주어진 역할을 가뿐하고 멋지게 해내고 싶었다. 일 잘하는 사람, 아는 게 많은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 등등의 칭찬을 받고 싶었다. 한마디로 나는 관종이었다. 늘 칭찬을 갈망하며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고, 남들의 평가에 조바심을 냈다. 무엇이든지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들볶았고, 스스로 정해 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여 자책을 하며 괴롭혔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인생이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직업적인 성공도 재물도 욕심낸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남을 비교하고 내 자식과 남의 아이를 비교하며 살던 날들은 고단하기 짝이 없었고, 성취감은커녕 자괴감만 늘었을 뿐이었다. 모자라고 못나고 부족해도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을, 내가 나를 바로 보고 받아들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까 지난날의 내가 가여워졌다. 못났으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떤가. 굳이 잘하지 않아도 되는 거고, 뛰어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자식에 대한 욕심도 그랬다. 굳이 남의 자식과 비교하며 서로를 힘들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서 공감 능력과 양심을 가진 가슴 따뜻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이의 성적과 출신 학교 따위보다 백 배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유치하고 못났던 엄마가 아이와 함께 사춘기를 겪고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삶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집에 몬스테라라는 귀족적인 이름에, 생긴 것도 이국적인 식물이 하나 있다. 하얀 도자기 화분에 푸르게 쭉쭉 뻗은 잎사귀가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특별히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았는데도 들여온 지 얼마 안 돼 신기하게 조그마한 새순 두 개가 갓난아이 젖니 올라오듯 머리를 쏙 내밀었다. 잘 자라라고 햇볕도 간간이 쐬어주고 한낮에 창가로 데려와 맑은 바람도 쐬어주고 했는데, 새로 올라온 줄기들은 어째 길다랗고 볼품없게 자라 바람에 휘청거리기만 했다. 제힘으로 꼿꼿이 서지도 못하는 저것들을 뽑아내야 하나 싶다가도 흙을 뚫고 올라온 생명이 기특해서 차마 치울 수도 없었다. 며칠 바라만 보다가 지지대를 구해 비리비리한 줄기 두 개를 같이 묶어 주었다. 그 후 이런저런 바쁜 일이 겹쳐 챙겨보지를 못하다가 문득 궁금해져 들여다보니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며 돌돌 말렸던 잎사귀를 보란 듯이 펼치고 있었다.
저까짓 것이 온전한 구실을 할까 싶어도 모자란 것은 모자란 것들끼리 서로 기대고 힘을 보태며 너끈히 삶을 견뎌내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의 인생은 나 혼자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을 만나 함께 하며 만들어가는 것임을 작은 식물 하나에서 배운다. 부족한 것 많은 어미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자식이 있고, 모나고 못난 나를 보듬어주며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는 지인들이 있어 세상은 살만하다. 그러니 조금 부족한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