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프롤로그
교육에는 형태가 존재하는가?
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은 '하나의 정형화된 것'으로
정의할 분야가 아니다.
그래서 교육에는 형태가 없다.
그렇다면 교육에는 영역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교육을 이루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이다.
공교육은 국가 교육의 근본이다.
학교는 공교육이 '공간적, 사회적'으로 표현된 공간이다.
모든 학생은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19세까지 학교에 소속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걸로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 공교육은 '제1지대 교육'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대립항이다.
어떤 점에서 대립항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시장 경제 체제의 구속을 받는가?'의 여부 같다.
공교육은 시장 경제 체제의 구속을 받지 않지만,
사교육은 시장 경제 체제의 구속을 받는다.
시장 경제 체제가 돌아가는 기본적인 법칙은 '경쟁'이다.
재밌는 점은 교육 시스템(입시)이 돌아가는 기본적인 법칙 또한 '경쟁'이다.
상성이 맞으므로, 사교육의 성황은 '하기 나름'에 달려 있다.
이렇게 사교육은 '제2지대 교육'을 구축한다.
사교육은 프로파간다의 대상이다.
사교육을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생은 학원에 끌려다니고,
학부모는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에 학원비를 내야 하고,
공교육은 사교육의 장사 전략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므로 사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는 건 당연하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사교육의 근절을 위해 노력해왔고,
최근에는 사교육에 '카르텔'이란 프레임을 씌워
적극적으로 척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시도들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프로파간다가 먹히지 않았다.
왜 사교육에 대한 프로파간다는 실패했을까?
필자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실패 원인을 꼽아보고자 한다.
첫째, '경쟁'이라는 교육 시스템의 법칙이 깨지지 않았다.
경쟁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발생하는 '서바이벌'이다.
인간은 누구나 승자가 되고 싶어하며, 패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교육 시스템에서의 경쟁은 '어떤 대학에 가느냐?'로 귀결된다.
모든 학생은 당연히 명문대에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명문대에 가지 못한 학생들의 패배의식은
'잠재적인, 이내 폭발할 에너지'를 형성한다.
필자는 그 에너지가 사교육으로 향했다고 본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심리가, 경쟁으로 살아남는 사교육에 불을 붙였다.
둘째, 공교육의 근본적인 한계를 개선하지 않고
사교육 근절 정책을 펼쳤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비율은 1:1일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공교육은 이상적인 교육이었을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인간을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하고 교감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이는 불가능하다.
주목받는 학생이 있는 반면, 그림자처럼 묻히는 학생도 있다.
후자의 학생은 곧 경쟁에서 뒤처진 학생, 패배한 학생이 되어버린다.
성인이 되어 뜻밖의 성공을 거둘 수 있지만,
제도적으로 '실패한 학생'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공교육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공교육의 한계로 인해 '방치되는' 학생을 본
학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당연히 공교육을 온전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학생을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게 하려고,
사교육의 힘을 빌리는 결과로 연결된다.
그렇게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매해 커지고,
사교육비 지출도 매해 늘어나는 추세이다.
자연스럽게 '공교육의 붕괴'라는 문제로 연결되고,
교사들의 고민은 깊어지게 된다.
그 결과, 정부는 사교육 근절 정책이라는 칼을 빼들게 되었다.
2023년 무렵, '사교육 전문 학원이 수능을 출제하는 사람들과
문항을 거래했다.'라는 의혹이 확산됐다.
이에 사교육 전문 학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
'킬러 문항 배제'라는 출제 원칙 또한 하달되었다.
만약 이 무렵 수능을 본 학생이 있다면 질문을 던지겠다.
정말 킬러 문항이 배제되어서 수능을 응시하기 유리해졌는가?
'글쎄요...'라는 답변을 할 학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능은 어쨌든 변별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험이다.
손도 못 댈 킬러 문항이 없어진 대신, 전체 문항의 평균 난도를 상승시켰다.
중위권에게는 '악재'인 셈이다.
결국 정부의 사교육 근절 정책은 문제의 '현상'만을
억제하려 하고, '본질'을 해소하지 못했다.
공부는 '자기주도적 습관'이 중요하다.
스스로 의지를 갖고 노력해야 공부의 결과가 제대로 발현된다.
즉, 사교육은 공부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즉각적인 향상 효과'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학원 수업만 듣고, 따로 복습을 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듯이.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해야 된다.
이를 알면 사교육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공부하는 의지조차도 없는 학생이 많기에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받게 하는 형편이다.
사교육의 한 가지 함정을 발견했으리라 생각한다.
흔히 '1타 강사'로 불리는 강사들의 '인터넷 강의'가
모든 걸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점을.
실습을 생각해보자.
실습은 교육자의 시연이 있고 난 뒤,
내가 직접 시연대로 따라하는 과정이다.
시연을 잘 이해했다면 따라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그러지 않는 경우도 많다.
1타 강사의 인터넷 강의도 마찬가지이다.
1타 강사는 그저 자신이 이해한 교과 개념을
남들이 이해할 수 있게 '시연'하는 것뿐이다.
그 시연을 내 몫으로 가져가려면,
직접 따라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1타 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단순히 듣기만 하면' 별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학생은 'Needs(니즈)'를 요구한다.
'강의를 들었으니(혹은 공부했으니),
내가 그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을 요구한다.
가령 연습 문제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물론 연습 문제는 어떤 교재든 간에 기본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시시하다.'
정말 제대로 된, 실제 시험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평가 도구를 은연중에 원하고 있다.
필자도 학창 시절, 수능 역사(동아시아사, 세계사)를 공부했을 때
원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교육 지대가 형성된다.
수험용 교재의 집필을 주관하는 필진들의 세계,
이것이 곧 제3지대 교육이다.
제3지대 교육은 제2지대 교육인 사교육에 공생한다.
그러므로 공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사교육과 완전히 일체된다고 볼 수도 없다.
제3지대 교육만의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제3지대 교육의 주요 특징은 '말하지 않는 교육'이다.
교사들은 수업에서 '말하고',
1타 강사 또한 인터넷 강의에서 '말한다.'
하지만 제3지대 교육에서 내놓은 교재는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글로, 수록된 문제 등으로 말한다.
교사 혹은 강사가 얼굴을 비치며 말했다면,
필진은 얼굴을 비치지 않고 말한다.
필진의 스탠스가 곧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의 스탠스와 유사하다.
제3지대 교육은 생각을 유발하는 말을 장악한다.
그러면 제3지대 교육에서 몸담는 사람들은
일하는 과정에서조차 말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필진은 같은 필진 간에는 '치열하게' 말한다.
그래야 결점 없는 교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제3지대 교육은 앞에서 말하지 않지만,
뒤에서 누구보다 많이 말하고 있다.
제3지대 교육에 있는 사람은 배경이 다양하다.
공인된 제1지대 교육인, 공교육에 선다면 정교사 자격증을 필요로 하고,
제2지대 교육인 사교육에 설 때도,
가르치는 교과목과 관련된 전공을 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제3지대 교육은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물론 가르치는 교과목과 관련된 전공을 하는 게 유리하긴 하다.
하지만 높은 진입장벽을 걸어두지는 않는다.
그리고 제3지대 교육에 있는 사람은 주목받지 않는다.
당연히 교재로만 다가가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들은 뒷거래로 거액을 받는 '카르텔'이 아니다.
그저 '샐러리맨'이다.
이 점을 독자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필진은 독특한 방법으로 교육에 몸담는 사람이지,
정부에서 말하는 '카르텔'은 아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사설 모의고사 등도 제3지대 교육의 산물이다.
신분을 따져보면, 대학생인 경우가 99%이다.
동기를 따져보면, 용돈벌이와 같은 사소한 동기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교육의 보이지 않는 기둥을 이루고 있다.
작금의 사교육은 제3지대 교육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반쪽짜리다.
결국 정부에서 말하는 사교육 카르텔은 제3지대 교육인 셈이다.
그런데 제3지대 교육 자체에는 죄가 없다.
은밀한 문항 뒷거래는 사교육 먹이사슬에서
상위를 이루는 사람들의 커넥션이지,
잘해야 그 먹이사슬의 중위에 있는
제3지대 교육자들에게 문항 뒷거래는 금시초문이다.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게끔 공개적으로 교재를 출판한다.
이것이 의혹이 무성한 사교육 카르텔의 '본질'이다.
이 본질을 모르고 행한 사교육 근절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시리즈에 들어가기 앞서
작금의 교육 문제, 필자 나름대로 정의한
교육 지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그래야 시리즈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이 시리즈에서는 필자가 몸담았던 제3지대 교육의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을 보면서 든 생각을
가볍게, 솔직하게 그러면서 뼈있게 풀어보려 한다.
시리즈 제목에 'Note'를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교육은 생각보다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알고,
누구든지 교육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고민하는
물꼬가 트이길 바란다.
이 글의 주제 의식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