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히 본 제3지대 교육의 '무기'

제3지대 역사교육 Note: 초창기 #4

by 샤를마뉴

2022년 7월 4일,

제3지대 교육의 중심을 향해 더 들어갔음을

알리는 날이었다.

첫 출근 당시 찍은 사무실의 모습, 3시 50분에 찍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후 3시 50분쯤, 면접과 테스트를 봤던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제 한 번만 올 곳이 아니라 계속 올 곳인지라

마음이 조금 들떴다.

그래서 사진을 한 컷 남겼다.


그때 검토진이 8명 있었다.

4명은 예전부터 일했던 사람이었고,

필자 포함 4명이 새로 선발된 검토진이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어색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하나의 유의미한 경험이었다면,

다른 대학, 다른 학과에 재학 중인 사람들을

한 공동체 안에서 볼 수 있었던 게

의미가 깊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대학 사람이라 하면,

'내가 다니는 대학의 사람'으로 주로 규정되는데,

'다른 대학의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렇게 흔치 않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그 당시 검토진들과 특별하게 연이 더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오후 4시, 필자를 비롯한 새로 선발된 검토진을

회의실로 따로 불러냈다.

그 팀을 지도하는 팀장님도 그날 처음 보게 되었다.

업무에 대한 간략한 소개,

간식이 비치되어 있으니 업무 중에 먹어도 된다는 언급,

이 팀을 아느냐는 질문을 했던 게 기억난다.


이 팀의 존재를 알았냐는 질문에 대해선 짚고 넘어갈 게 있다.

팀장님이 그 질문을 한 의도는

아마 '수험생 당시 우리 팀이 만든 교재를 이용했는가?'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수험생 당시 그걸 알았을까?

몰랐다. 전혀 몰랐다.

필자가 수험생이었을 때는 '수능 역사'와 관련한 교재 등이 지극히 부족했다.

그래서 사교육 도움 하나 없이 독학으로만 수능 역사를 대비했었다.

너무나 불리하고 열악한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평가원 모의고사, 수능에서 '선택권'을 보장한 의도는

'자신이 맞는 분야의 교과목'을 공부하는 기회를 줌으로써

수능 대비를 유리하게 해주고,

아무래도 원치 않는 교과목보다는 원하는 교과목을 공부하는 게

흥미도 더 생기니 공부 부담을 줄여주려는 것일 테다.

의도는 좋다.


그러나 실질에선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들의 수요가 높은 교과목도 있는 반면,

수요가 극히 부족한 교과목도 있다.

후자의 교과목 중 하나가 수능 역사(동아시아사, 세계사)이다.


그렇다면 교육 구조는 어떠한 흐름으로 흘러갈까?

전자의 교과목은 일명 '파이'가 많으니,

학교에서도 그 과목을 무조건 개설해주고,

사교육도 그 과목 관련 강좌나 교재를 통해 수험생을 끌어모을 것이다.

반면, 후자의 교과목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학교에서 과목이 개설되지 않기도 하며,

사교육도 마찬가지로 그런 과목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수요가 부족한 교과목은 '교육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공부를 하는 것에 있어서 유불리가 발생하게 된다.

필자가 쓴 검토진 지원서

그저 역사를 좋아해서,

수능을 볼 때도 역사 교과목을 선택한

'역덕' 그 자체인 필자는

고등학생 때도 외롭게 투쟁해왔고,

대학에 온 이후에는 '필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수험생에게 도움을 주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수험생 커뮤니티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래서 시험 문제도 제작해보고, 학습 공략도 쓰고 그랬던 것이다.

필자가 소속된 학과는 사학과이지만,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도 있었던 것이다.


사학과 내에서도 역사교육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필자 사학과는 교직이수가 불가한 데다

애당초 사학과의 교육 목표는 '역사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탐구'이다.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역사교육과에 가야 한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의 공부가 부족했으니 뭐 어쩌겠는가?

사학과의 위치에서도 역사교육을 좇아야 하는 게 필자의 운명이었다.

사학과 동기들과는 다른, 외로운 길을 걸어야만 했다.


아무튼 필자는 누구보다도 수능 역사에 진심이었고,

역사의 매력에 빠지는 학생이 많아지기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 좋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때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제3지대 교육을 알아나가면서 점점 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팀장님의 질문에 필자는 'No'였다.

수험생 당시에는 그 팀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생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겸, 그리고 경험을 쌓을 겸해서

그 팀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 후 이어지는 팀장님의 말씀은 '몰랐어도 괜찮다.'였다.

알든 모르든, 검토 역량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뜻이겠다.


이어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당연하지만, 꼭 필요한 절차였다.

겨울방학 때의 검토 업무 프로세스가 잘못됐다는 걸

여기서 확실히 알았다.


좀 안정이 되었다.

이 업무는 매주 정기적으로 업무가 주어지고,

그렇다는 것은 급여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간은 '1년'이었다.

1년동안 꾸준히 이 업무만 잘한다면, 다른 걸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업무에 들어갔다.


필자가 처음 검토했던 시험지

시험지 두 세트가 필자 앞에 놓였다.

퇴근 전까지 검토해야 되었다.

'테스트 때 보았던 시험지를 이 팀에서

만드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또 새롭게 봤던 것은 해설지였다.

단순히 시험지만 푸는 게 아니라,

시험지와 함께 실린 해설지도 오탈자가 없는지 등을 검토해야 된다.

이걸 첫 업무 때부터 봤는지, 그 다음부터 봤는지에 대한 기억은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주요한 검토 업무 프로세스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문제지를 푸는 건 재밌었다.

테스트 때 봤던 문제지의 모습도 경이로웠는데,

검토진 업무를 할 때는 원없이 볼 수 있으니 좋았다.

그리고 놀라웠다.

이런 퀄리티의 시험지가 완성되려면 노력이 이만저만 들어가는 게 아닐 텐데,

어떻게 기계가 돌아가듯 착착 뽑아내는지가 궁금했다.

검토진에 소속됐을 당시에는 풀 수 없었던 미스터리였다.


해설지를 보는 건 솔직히 지루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지루했던 것 같다.

문제지를 검토할 때는 '푸는 과정', 즉 머리를 쓰는 과정이 있으니까

집중도 되고 재미도 생기는 부분이 있는데,

해설지를 검토할 때는 글더미를 읽어나가면서 오탈자를 잡아내는 정도니까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

향후 필자가 집필진이 됐을 때도, 문제지는 그런대로 잘 만들었지만

해설지를 쓰는 것에 애먹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래도 해설지의 기능은 중요하다.

집필진에 있었을 당시, 팀장님이 이에 관한 언급을 했던 적이 있다.

'해설지까지 있어야 하나가 된다.'라고.

맞는 말이다.

이건 평가원 모의평가/수능의 고질적 문제점과도 관련된다.

평가원은 모의평가, 수능에 대한 해설지를 '형식적으로만' 준다.


한 가지 예시를 살펴보자.

아래는 올해 6월에 시행된 평가원 모의평가 세계사 19번 문제와 해설이다.

병합1.jpg 2026학년도 6월 평가원 모의평가 세계사 19번 문제(왼쪽), 평가원의 공식 해설(오른쪽)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다.

제시문 해석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제시문을 살펴보면,

'행정 권력 수장으로서 전쟁을 유발', '직전 의회를 탄압했던 전력',

'인민은 새로운 의회를 만든다', '파리의 질서를 회복~의회가 지정한 구역 내로 한정'과 같은

문제풀이와 관련한 힌트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 힌트들이 가리키는 대상이 중의적이다.

국민의회를 탄압하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끌어와 전쟁을 일으킨

루이 16세인지

프랑스 2월 혁명 이후 세워진 제2공화정을 탄압하고, 프로이센과 전쟁을 일으킨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인지 확실하게 분간하기 어렵다.


'인민은 새로운 의회를 만든다'는 사실 역시 중의적인 힌트이다.

루이 16세가 살았던 당시에 국민의회 말고도 입법의회, 국민공회가 만들어졌고,

루이 나폴레옹이 퇴위한 이후에도 제3공화정이 수립되었다.


'파리의 질서를 회복 ~ 의회가 지정한 구역 내로 한정'으로도

정석적인 문제풀이를 하기 어렵다.

루이 16세는 실제로 왕권이 정지되면서 이동하는 것에 제약을 받았고,

루이 나폴레옹은 전쟁 당시 프로이센군에 생포되면서 '파리에 있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문제에서 묻는 인물이 루이 16세임이 판명나는데,

문제는 루이 나폴레옹이 전쟁 당시 파리에 있지 않았다는 내용을

교과서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설마 교육과정을 그렇게도 중시하는 평가원이

'교과서에 배우지 않은 내용'으로만 풀이가 가능한 문제를 내겠는가?


그렇다면 정석적 풀이가 되는 내용은 무엇일까?

제시문의 제2조 내용이다.

'새로운 의회가 조치를 취할 때까지 행정 권력 수장의 직무는 정지'된다고 나와 있다.

실제로 루이 16세는 입법 의회가 들어서면서 왕권이 정지되었지만,

루이 나폴레옹은 '퇴위'를 해버린 것이기 때문에, '직무 정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를 했어야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었다.

이렇게 자료 해석이 어려운 세계사 문제는 필자도 처음 봤다.


이처럼 이 문제는 상세한 해설이 필요하다.

대충 해설해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평가원이 내놓은 공식 해설은 너무 불친절하다.

강사들의 문제풀이 역시도 썩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몇 페이지 분량의,

어려운 문제에는 길고도 긴 상세한 설명을 해놓은

해설지의 존재는 그 팀을 돋보이게 하는 핵심 중 하나이다.

검토를 볼 때 지루했고, 집필진 때도 해설지를 쓸 때 흥미를 못 느꼈지만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이렇게 필자는 제3지대 교육에서 '콘텐츠적 특징'을 더 알아가게 되었다.

겨울방학에 검토 업무를 했을 적 봤던 콘텐츠는

평가원 모의평가, 수능에 나온 자료를 한데 묶어놓은 일종의 '기출문제집'이지,

평가원과 같은 프로세스를 거쳐 만든 시험지와 해설지는 아니었다.

제3지대 교육의 중심으로 더 파고들어가면서, 더 '고도화된' 콘텐츠를 볼 수 있었다.


사교육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예전에 필자가 알았던 사교육은 일명 '1타 인터넷 강사'였는데,

고도화된 교육 콘텐츠를 내놓는 집필진들의 세계가 있었다는 걸

확실히 알아가게 되었다.

검토진의 시선으로 보는 집필진은 '궁금함' 그 자체였다.

동시에 그 궁금함을 직접 해소하고픈 의지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동안은 검토진의 지위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 계속 검토진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그리고 이 글이 연재되는 날짜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5년 7월 4일이다.

필자가 의도했다.


이 글의 주제 의식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10

keyword
이전 04화인생길이 된 제3지대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