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전환기 #1
2022년 9월,
다시 학기가 돌아왔다.
여름방학 때 사회경험의 세례를 받고,
학기를 마주하는 자세는 사뭇 달랐다.
건방진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학과생활에 그렇게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학과생활보다 그 일이 훨씬 재밌었다.
여기서 말하는 학과생활은
'학과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전공 공부는 열심히 했다.
필자는 역사 공부가 천직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역사가 재밌다.
그런데 학과의 분위기는 썩 마음에 맞지 않았다.
필자만큼 역사 공부나 혹은 역사교육의 세계에
열의를 보이는 동기들은 필자 눈엔 없었다.
한둘씩 어울리던 동기들과도 이 즈음부터 소원해졌다.
사학이라는 학문은 좋지만, 필자가 속한 사학과는 준거집단이 아니다.
여러 불만이 지금도 있다.
어떻게 보면, 매너리즘이 온 것이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대학생이 있다면,
필자처럼 학과와 거리를 두지 않길 바란다.
필자는 새내기 생활이 'AII STOP'이었기 때문에,
대학생활에 재미를 못 붙이고, 대학 인연도 제대로 못 만든 케이스이다.
지지리도 없는 운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선택했던 길이
사회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대학생활은 젊음이 흘러넘치는 아름다움이다.
꼭 누려야 한다.
안정기에 접어들면, 초심을 잃는다고 한다.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굶주리지 않으니, 배고플 때의 절박함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일을 갓 시작할 때는 원하던 거를 이루게 되면서 좋은데,
일이 손에 익을 적이면 점차 회사의 단점이 보이고 그러는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이 장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사교육 루틴(Routine)은 일반 직장 루틴과 많이 다르다.
일반 직장 루틴이라 하면 9 to 6의 평일 근무이겠다.
아침과 낮에 온전히 에너지를 쏟고 저녁엔 쉬는 루틴이다.
그게 건강, 일과 삶의 균형의 측면에선 가장 좋다.
사교육 루틴은 일반 직장 루틴대로 흘러갈 수 없다.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의 입장에 빗대어보자.
평일의 학원 강사는 '아침, 이른 오후' 시간에 활동할 수 없다.
학생들이 그 시간에 학교에 있으니까.
학원 강사의 활동 시간대는 빨라야
학교의 '방과후 수업 시간'대이다. 4시 무렵이라 보면 된다.
그러므로 활동 시간대의 끝도 자연히 늦춰질 수밖에 없다.
오후 10시, 공개적인 사교육 루틴의 '끝'이다.
'공개적인'이란 말이 붙은 건,
어떤 경우에는 '비공개적인 시간'에도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집필진 시기를 다룬 후속 글에서 상세히 풀겠다.
교재 집필진과 검토진은 학원 강사가 아니다.
학생을 직접 대면하고,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일반 직장 루틴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교재 집필진과 검토진이 '대졸자'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 팀의 집필진과 검토진은 '대학생'이다.
본업은 공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반 직장 루틴을 적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아침, 낮에는 대학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대학은 초중고와 달리 저녁 수업이 개설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제3지대 교육 역시 사교육 루틴을 적용해야 굴러간다.
검토진은 비교적 일과 삶의 균형을 챙길 수 있다.
'검토만 잘 보면' 끝이다.
그 이외의 시간은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다.
지난 장에서 봤듯이, 출판 교재 검토를 할 때는
집에서 일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가끔 있는 일이었다.
오프라인 업무, 그것도 단시간의 업무만 잘한다면 문제 없다.
업무가 손에 익으면 '저녁 시간을 잠깐 투자해
한몫을 챙기는' 쏠쏠한 용돈벌이이다.
필자도 그렇고, 다른 검토진도 기본적으로 몇 개월은
쭉 업무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점은 배가 고팠다.
휴식시간을 주긴 했는데, 저녁을 먹을 요량의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미리 먹고 오거나, 퇴근하고 먹어야 했는데
미리 먹기에는 시간이 이르고, 퇴근하고 먹기에는 시간이 늦었다.
야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늦게 먹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필자는 야식을 즐기는 게 1년 중 손에 꼽기에, 그 부분이 조금 힘들었다.
사교육은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정보다는,
'그 시간에 더 일을 보는' 차가움이 있는 공간임을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식사 시간도 아껴야 하는' 사교육 루틴은 보편적일 듯 하다.
단지 필자가 속한 교재 집필&검토팀만 그런 게 아니라,
저녁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학원 강사에게도
느긋이 시간을 내서 식사를 하는 건 힘든 일이겠다.
필자가 학원을 다니거나, 학원 강사를 만나뵌 적은 없지만
제3지대 교육을 경험해보니, '거기도 그러겠구나'라고 추론이 되었다.
사실 어떤 일을 하든, 단점이 있는 법이다.
그 단점이 너무 크고, 자신의 건강을 해칠 정도라면 일을 그만둬야 하겠지만,
필자가 검토 업무를 하면서 알았던 단점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감수하고 하지~' 이런 마인드였다.
단점 없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설령 덕업일치일지라도.
환경은 마음가짐에 따라 바꿀 수 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할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어떻게든 잘 해내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환경과 달리 바꾸기 어렵다.
싫어하는 사람과 엮일 일을 없게 하면 문제가 없다.
좋든싫든, 싫어하는 사람을 봐야 할 경우에 문제가 된다.
그 경우가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이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으면 더 하게 되고
일이 쉬워도, 사람이 싫으면 그만두게 된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필자는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혼자 초연히 있을 때, 혼자 무언가에 몰두할 때가 훨씬 좋다.
이 세상은 인간관계로 피곤한 세상이다.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중에 필자가 그 팀의 집필진이 되면서,
집필진과 교류했을 때는 '사람 하나하나가 좋고 대단함'을 느꼈다.
그런데 검토진의 시선으로 본 집필진은 '벽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집필진은 집필진끼리 일을 하고, 검토진은 검토진끼리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같은 팀에 소속됐어도, 두 부서로 나뉘는 셈이다.
그때는 집필진의 구성이 필자가 있었을 때 그리고 지금과 많이 달랐는데,
집필진과 대화 한 마디 안 나누던 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팀장님은 인사도 건네고, 가끔 형식적인 대화가 있을 때 친절하셨다.
나중에 집필진의 위치에서 봤던 팀장님의 면모는 더 놀라웠다.
조직의 흥망성쇠는 비전(Vision), 운영 능력이 크게 작용하겠지만,
그못지 않게 조직문화도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성공한 조직, 좋은 조직은 까보면 '좋은 사람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망 좋은 사람', '발이 넓은 사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리더인 팀장 그리고 집필진들의 면모, 역량을 봤을 때
그 팀은 제3지대 교육에서 상당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같은 팀, 다른 소속감', '삭막한 분위기'
이런 조직문화의 측면이 약간 아쉬웠을 뿐이다.
필자의 집필진 시기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신입인 '초창기', 나름 경력이 쌓인 '안정기'이다.
신입 집필진은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검토진으로서는 경력을 쌓았지만, 집필진은 또 다른 세계였다.
많이 배워야 했다. 그리고 많이 갈고닦아야 했다.
신입 집필진 때는 팀 운영을 어떻게 해야된다느니를
주장할 권한, 여력이 없었다.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필자가 팀을 움직일 동력을 얻었다.
이 시기의 필자는 일도 일이지만,
조직문화의 측면에서도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신입 집필진'이었던' 필자가 신입 집필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검토진'이었던' 필자가 검토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 고민은 다음과 같은 행동의 답변으로 도출되었다.
'할 일은 할 일대로 잘하되, 평소에는 자애롭게'였다.
물론 당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그렇게 나름대로 노력했다.
좋은 미래는 과거 그리고 현재의 '더 좋아지려는 의지'로 만들어지고,
과거에 어려웠던 사람은 지금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
필자의 모토이기도 하다.
이 장에서는 실제 업무의 내용보다는,
업무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도 '횡적'이었다.
2022년 9월에서 시작되어, 2023~2024년을 갔다왔다.
이 시리즈의 후반부가 어떨지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실제 업무는 지난 장에서 밝힌 내용의 '반복'이다.
그래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고, 실물 자료도 특별히 남겨두지 않았다.
이 장의 요지는 '전환기 #1'이란 소제목을 붙인 것처럼,
필자가 사교육 그리고 제3지대 교육의 '환상'에서 '현실'을 보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음을 밝힌 것이다.
전환이 일어난 요인 중 하나가 어쩌면 '반복', '매너리즘'이었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변화 없이 안주하는 것'을 싫어한다.
성장으로 빛을 발하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큰 전환을 꿈꾸게 되는데, 그것이 집필진으로의 길이었다.
다음 장부터 그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을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