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전환기 #2
2022년 9~11월,
집필의 영역에 '도전'하고, 집필의 '큰 힘'을 알았다.
여기서 말하는 큰 힘은 '지식재산'이다.
원래도 학원 내 콘텐츠팀에 소속되어 검토 업무를 봤고,
검토했을 때 본 시험지, 개념서 등에서 놀랐지만
누가 '만들어놓은 걸' 검토하는 거지,
필자가 '직접 만드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직접 만드는 걸 도전했다.
물론 집필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필자는 취미삼아 시험지를 만들어보고,
수험생 커뮤니티에도 공유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음을
이전의 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얼추는 알고 있었다.
팀에서 만드는 교재처럼 정교하고, 질적인 걸
기계적으로 뽑아내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검토를 하다보니, 집필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렸다.
'필자도 이런 시험지를, 이런 교재를
두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욕심이
달이 흐를수록 커져만 갔다.
다시 말하면, 필자에게 검토 업무가 루즈해진 것이다.
더 새로운 자극을 '집필의 영역'에서 찾으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아직 전문가 수준의 집필 능력이 없었다.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이 준비는 필자가 속한 팀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 하게 되었다.
그것이 뭐였을까? 이제부터 말해주겠다.
역시 현대는 '정보전'인 것 같다.
필자가 제3지대 교육에 입문한 것도,
입문에서 안정으로 나아간 것도,
쓰리잡까지 하며 일복을 터뜨린 것도,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재 집필의 욕구를 성취로 연결시킨 계기도
역시 관련 정보를 '우연히' 접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우연일까, 필연일까? 기묘하다.
필자를 제3지대 교육의 길로 이끈
일종의 대표이사라 볼 수 있는 학원은
'전통 강자'의 축에 속하는 학원이 아니다.
전통 강자를 위협하는 '신흥 강자'였다.
학원은 레드오션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동네를 가든 학원이 있다.
사교육의 메카로 꼽히는 대치동을 가면
학원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이다.
난립하는 학원 생태계에서 신생 학원은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신생 학원은 신흥 강자로 나아갔을까?
필자가 계속 언급한 '팀의 존재'에 그 답이 있다.
대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집필진이
평가원 모의평가, 수능에 써도 손색이 없을 시험지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꿇리지 않게 만든다.
학생의 Needs를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사교육의 메카에서 제3지대 교육의 무기를 모르면
안 되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즉,
(1) '초심자를 경력자로 키우는' 독특한 방식으로 업계 내 인사를 확보하고
(2) 전통 강자의 학원이 주목하지 않은 제3지대 교육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며
(3) 정성적 노력이 들어가는 교재 집필을 표준화, 정량화한 게
신생 학원을 한순간에 신흥 강자로 떠오르게 한 요인이다.
해당 학원 창업자의 인터뷰는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필자가 위에서 말한 내용과 연관된다.
https://www.hiconsy.com/907c2c6a-996d-436e-a9cc-ecbe34485e74
필자가 속한 그 팀은
학원이 추구했던 이상을 가장 현실적으로 구현한 결과였다.
그 팀은 '업계 최고 수준'을 자부한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더불어 과거 필자가 수험생활을 했을 당시,
'있었으면 좋겠던 것' 그렇지만 '생각으로만 하고 있었던 것'이
구현된 게 그 팀이니 절로 열정이 타올랐다.
필자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왔음을 예견했다.
이런 기회는 안 잡으면 바보이다.
허나 제3지대 교육의 물건을 '검토'하는 길까지는 찾았는데,
'집필'하는 길은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면접 당시 '집필진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그 질문대로 될 기회도 아직이었다.
집필진 선발 공고가 올라와야 뭐든 준비할 텐데 말이다.
그래서 눈을 돌려봤다.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우연히 학원에서 '문항공모'를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걸 알았다.
문항공모는 사교육의 '경매'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개인이 수험용 교재에 쓰이기 위한 문항을 제작하고,
그 결과물을 학원에 보내면,
학원이 이를 살펴보고 '쓸 만하겠다' 싶은 문항을
'이 정도 가격에 살래요.'하며 구매하는 과정이다.
사교육 카르텔의 주범으로 지목된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필자가 찾은 문항공모는 '공개된' 방식이었다.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질좋은, 그러면서 교육적인 문항을 개발하기는 어렵다.
정성적인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문항 개발을 위해서는 '기본 요건'과 '선택 요건'이 요구된다.
여기서 기본 요건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요건이며,
선택 요건은 지켜지면 좋은 요건이다.
기본 요건의 경우에는
(1) 교육과정(교과서 내용에 의거, 과도하게 지엽적이지 않음)을 준수하며
(2) 개념의 오류(역사 과목의 경우, 대표적으로
인과관계 오류)가 없어야 하며
(3) 제시문이나 선지가 국문법적(맞춤법, 문맥)으로 무결해야 한다.
선택 요건의 경우에는
(1) 제시문에 학문과 교육의 접점이 잘 이뤄진
흔적이 있는지(가급적 기본이면 좋다)
(2) 제시문이 아닌 형태의 자료(Ex. 교사와 학생 간 대화, 종이, 책 등)의 심미성이 있는지
같은 것들이 있겠다.
평가원 모의평가와 수능의 문제는 바로 그런 요건들이
매우 잘 지켜진 결과물이다.
학원에서는 명목상으로는 '누구나' 문항공모에 도전하게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평가원 모의평가/수능, 사교육에 관한 지식을 알고 있어야
도전에 성공하기 유리했다.
문항을 채택하는 것은 오로지 학원 마음이니깐, 채택하지 않으면 끝이다.
필자는 학원 콘텐츠팀에 소속되면서, 학원이 원하는 결과물들을 검토해왔으니
나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셈이다.
그럼에도 학원이 마음에 들 만한 문항을 만들기에는 어려웠다.
문항에서 중요한 건 '내용'이다.
선지 5개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구성하면 된다.
그런데 제시문을 구성하는 건 정말로 어렵고, 많은 노력을 요한다.
내용을 잘 담는 기술, 그것이 곧 전문 집필진의 역량이었다.
훗날 필자가 집필진의 위치에 선 뒤, 계속 갈고닦아야 했던 요소였다.
문항 공모를 했을 적 그리고 신입 집필진 때는 그것이 부족했다.
그래도 아마추어적인 기술 +
그간 스스로 축적했던 노하우로
문항공모에 출품할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평가용 8문항을 제작했다.
원래 10문항을 만드려다가
문항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학기 중이라 병행하기에도 쉽지 않다.)
문항공모 마감 기한이 임박해서 8문항만 만들게 됐다.
해설지도 써야 했다.
직접 만든 문제여도, 일일이 해설해주는 게 쉽지 않았다.
사실 귀차니즘이 더 크게 작용했다.
문항공모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집필 프로세스'에 대한 감을 잡았다.
그 팀의 집필진은 매주 이 프로세스를 소화한다는 사실에
존경심이 들었고, '힘들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집필진을 해야겠다는 동기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 팀 집필진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었다.
검토 업무로 얻은 노하우만으로 문항 공모에 도전하기에는
여러 한계점이 있었다.
'집필진이 된다면 이 분야의 정점에 오르겠군.'이라 생각이 들며
새로운 목표의식이 분명해졌다.
필자도 반드시 집필진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항공모는 역할 전환을 부추긴 스모킹 건(Smoking gun)이었던 셈이다.
11월 4일,
문항공모 결과에 대한 회신을 주는 날이었다.
접수일이 10월 12일이었으니, 그로부터 3주가 좀 넘은 시점이었다.
'한두 개 정도는 채택되지 않을까?'라며 내심 기대했다.
필자만큼 수능 역사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신이 와서 살펴봤다.
옳거니! 채택되었다.
당연히 8문항이 다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3문항이 채택된 거면 절반은 채택된 셈이다.
놀랐던 건 채택된 문항당 매겨진 금액이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금액을 쳐준다고?'라고
생각될 정도로, 대학생 입장에선 후한 금액이다.
여기서 지식재산의 힘을 알았다.
집필진을 해야 할 이유가 더 확고해졌다.
검토진은 '수동적' 저작자이다.
집필진이 만들어놓은 원고를 '검토'할 뿐이다.
그래서 권리나 대우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집필진은 '능동적' 저작자이다.
제3지대 교육의 '완전한 주인'이다.
문항공모 때 받은 금액을 보고서는,
집필진의 위치에 오르면 얻어갈 것, 쟁취할 것이
필자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필자도 '제3지대 교육의 주인이 되어야겠다'라는
강력한 일편단심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집필진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면,
의무도 뒤따르는 법이다.
의무의 크기는 검토진 때보다도 몇 곱절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집필진에 대한 '환상'에
아른거렸던 것 같다.
집필진으로서의 의무를 지고 나서야, 현실이 보이게 되었다.
여하튼 이제 필자는
제3지대 교육의 바깥에서, 중심의 인근으로
중심의 인근에서 중심 그 자체로 향해가고 있었다.
문항공모에 성공한 것은
필자가 집필진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집필진을 하겠다는 의욕을 크게 끌어올린 계기였다.
남은 일은 그 팀이 집필진 모집 공고를 내기를 기다리는 거였다.
'필자는 이제 준비된 사람이다. 뽑지 않으면 손해다.'를
어필하는 날이 오기를, 검토진 자리에 있으면서
차분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 날이 다가왔다.
다음 장에서 이어진다.
이 글의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의 두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첫 번째 글은 문항 개발의 원리, 두 번째 글은 '선택 요건'이 잘 지켜진 문항의 예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5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