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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Jun 26. 2020

아빠, 손이 쭈글쭈글해졌어요.

학교에서 배운 것은 틀렸다.

아이는 욕조에서 목욕하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30분~1시간을 혼자서 노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물에서 놀면 아이 손이 쭈글쭈글해진다. 자기 손에 주름을 보고 아기 때는 놀라서 울었던 적도 있다. 초등학생 된 아이는 물에 오래 있으면 왜 손이 쭈글쭈글해지냐고 물어본다.


삼투압 때문이야.


학창 시절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얘기해줬다. 그런데 사실 물에 오래 있을 때 손이 쭈글쭈글해지는 것은 삼투압 때문이 아니다. 피부의 신비는 그보다 더 깊고 심오하다.




피부는 외부 세계의 위협에서 인체를 지키는 방어막인 동시에 피부에 자리한 수백만 개의 신경 말단이 삶의 모든 과정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피부는 물리적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리적, 사회적인 부분에도 정교하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벽과 창문의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놀라운 물질로 이루어진 피부는 세상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다. <피부는 인생이다.>


피부는 일종의 벽인 동시에 계속해서 움직인다. 줄기세포가 기저층에서 새로운 피부 세포를 계속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몸에서 매일 떨어져 나가는 피부 세포는 100만 개 이상이고 이는 보통 집에 쌓인 먼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의 규모다. 표피 전체가 매월 완전히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면 심지어 이런 흐름이 멈추지 않고 이루어지면서도 피부 장벽에 샐 틈도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바깥 온도가 어떤 상태이건 체온은 팽팽한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듯이 섭씨 36도에서 38도 사이로 유지되어야 한다. 42도를 넘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굉장한 지능을 발휘하지만 열에 민감해서 더운 날씨에도 뇌를 보존할 수 있는 인체가 없었다면 인류는 결코 지구 전체를 가로질러 곳곳으로 이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모두 근면 성실한 에크린 샘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국수 가락처럼 생긴 에크린 샘은 진피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어 구불구불 피부 표면까지 이어지며 반대쪽 끝이 땀구멍을 이룬다. 우리 피부에는 이런 땀샘이 400만 개 존재하며 매일 말 그대로 양동이 하나 분량의 땀을 밖으로 퍼낸다. 사람에 따라 땀을 한 시간에 3리터나 흘리는 경우도 있다.



아빠, 물에 있으면 왜 손이 쭈글쭈글해져요?



목욕을 하고 나면 손가락 끝이 쭈글쭈글해진다. 일종의 삼투압 효과로 피부에서 수분이 조금 빠져나가 생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 물속에서 주름이 생기는 현상은 손바닥과 손가락 끝부분, 발 등 이 없는 피부에만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행히 물에 오래 있다고 해서 얼굴이나 이 쭈글쭈글해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2. 1930년대 외과의사들은 손가락 신경이 절단되면 물에서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반응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만약 신경이 절단된다면 물에 오래 있다고 해도 손가락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삼투압이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3. 물속에 있을 때 손에 주름이 생기는 이유는 젖은 물건을 쥐기 위해서다. 뉴캐슬 대학교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모아 따뜻한 물에 손을 30분간 담갔다가 물 묻은 구슬을 옮기게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손을 담근 후 손가락에 주름이 생긴 참가자들은 피부가 젖지 않은 상태로 구슬을 옮긴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구슬을 집어서 옮길 수 있었다.



물속에서 손이 쭈글쭈글해지는 이유는 아이가 물속에서 장난을 더 잘 치기 위해서다.


놀랍게도 인간은 물 밖 생활과 달리 물속에 있을 경우 손의 일부 조직이 쭈글해지면서 물속의 물건들을 더 잘 잡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이런 놀라운 진화의 결과를 단순히 삼투압으로 설명하기는 무리가 있다. 피부는 그동안 인체의 가장 바깥에 위치하여 중요한 기관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피부가 없다면 체온 조절과 수분 조절이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피부는 감정과 느낌을 만들어내는 조직이기도 하다.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인체의 중요한 조직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내 몸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피부는 인생이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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