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협업
몇 해 전, 우리은행 대표단이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현지 부동산 디벨로퍼들과의 협업을 주선한 적이 있었다. 그 회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 팀의 위계질서였다. 좌석은 직급에 따라 배치되었고, 발언권 역시 서열에 따라 이루어졌다. 실무 책임자가 발표를 주도하는 동안, 부하 직원들은 자료를 챙기거나 보조역할을 했는데, 효율적이고 질서 정연했지만, 젊은 직원들 개개인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캐나다 회사에서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회의의 분위기는 큰 차이가 있다. 영국계 부동산 개발사인 Grosvenor 와의 미팅에서도 사장, 마케팅 책임자, IT 매니저 그리고 각 부서의 실무자들까지 다수의 인원이 참석하여 회의를 진행하였다. 직급으로 발언의 정도가 제한되지도 않고, 누구든 떠오르는 순간순간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였다. 프로젝트의 메인 기획자들도 혹시라도 개선할 부분에 대하여 각 파트의 직원들과 프로젝트의 컵셉부터 디테일한 부분까지 거리낌 없이 의견을 수렴하였다. 일반적으로 회의는 발표자와 보조자의 경계가 흐려진 대신, 다양한 시선이 부딪히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된다.
MZ 세대에서 커다란 사고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한국의 직장 문화는 직위와 위계, 집단에 대한 헌신등을 근간으로 하는 듯하다. 그 안에서 결속은 강해지고 실행은 효율적으로 빨라지는 듯 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와 수렴방식은 제한적이고, 개인의 자율성은 뒷전으로 밀릴 때가 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성과보다 상사의 눈치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고 한 말이 공감이 간다.
캐나다의 경우, 회사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개인의 자율을 중요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회의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 다양한 시각이 존중되는 만큼 창의성이 살아나는 시간이며 프로젝트의 새로운 방향이 추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때로는 논의가 길어지고 결정이 늦어지기도 한다. 자율은 창의적인 기획과 사고의 원천이 되지만, 방향이 분명하지 않으면 원을 그리며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단과 캐나다 디벨로퍼들이 서로 다른 분위기 속에서도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며, 두 나라의 기업 문화를 단순히 우열로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식은 달랐지만 목표는 동일했고, 과정만이 다를 뿐이었다. 이 경험은 단지 직장 문화의 차이에만 국한되지 않는 듯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의견 차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누군가는 체계를 중요시하며 빠른 결정을 선호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율을 존중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한다. 성격과 가치관이 다른 만큼 접근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단정하는 순간 발생하기 시작한다. 상대를 틀렸다고 규정하는 그 순간, 대화는 멈추고 협업은 단절되기 때문이다.
협업이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목표는 하나지만 그에 이르는 길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직선으로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멀리 돌아가며 풍경을 즐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속도를 더하고, 누군가는 깊이를 보탠다. 중요한 것은 각 방식의 장점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상황에 맞게 균형을 찾아가는 유연성일 것이다. 결국 개인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우리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