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원주민과의 관계 회복
캐나다의 로키산맥이나 BC주의 웅장한 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고요한 산등성이 위로 말을 타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원주민 전사의 우아한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처럼 캐나다의 역사는 원주민들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으며, 그들의 전통과 유산은 이 땅의 풍경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캐나다의 원주민(Indigenous peoples) 은 크게
퍼스트 네이션스 (First Nations) : 캐나다의 다수의 인디언 원주민 집단
이누이트 (Inuit) : 북극권에 거주하는 원주민
메티스 (Métis) : 유럽계 이주민들과 First Nations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
이와 같은 세 가지 집단으로 나누고 있다.
현재 캐나다 정부로부터 공인된 First Nations 부족은 634개로, 각각의 자치 정부와 보호구역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수천 년간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온 원주민들은 인고의 세월 끝에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캐나다 정부와 원주민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과 결정들로 인해 원주민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고, 그로 인한 상처와 후유증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식민지 시대부터 원주민들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그들의 토지와 자원을 강탈하고, 강제로 제한된 지역에 격리시킨 후, 언어, 신념, 사회적 관습을 억압하는 정책들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성마저 부정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게 된다. 이러한 억압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19세기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운영되었던 원주민 기숙학교인데 캐나다 정부와 교회 재단이 운영한 이 시스템은 원주민 아이들을 가정에서 강제로 빼앗아 지배 문화의 사상을 주입하는 잔혹한 정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방임과 학대 속에서 고통받고 때로는 죽어갔다.
2020년, BC주의 캠룹스 인디언 기숙학교에서 신고되지 않은 251구의 원주민 어린이 유해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역사의 참혹함이 다시금 조명되었다. 이를 계기로 캐나다 전역으로 확대된 기숙학교에 대한 조사에서 발견되고 있는 수천 명의 어린이 유해들을 보며 많은 캐나다인들에게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캠룹스 기숙학교에서의 유해 발견은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원주민 공동체의 상처와 아픔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최근까지도 캐나다 사회에서 원주민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한 대우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주민은 캐나다 전체 인구의 4.5%에 불과하지만, 경찰에 체포되는 사람들의 75%, 교도소 수감자의 31%, 위탁 가정 아동의 33%, 도시 빈곤층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캐나다의 전체 교도소 인구는 1% 증가한 반면, 원주민 수감자 수는 42%나 급증했다. 또한, 원주민이 비원주민보다 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두 배 더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이 통계들은 원주민들이 겪어온 깊은 고통과 문제들이 과거부터 강압적인 정책들에서 출발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 문제에 대한 사회의 대응이 얼마나 방치와 외면 그리고 무관심 속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화해의 시대)
오늘날 캐나다인들이 평화와 안전 속에서 살아가는 이 땅과 문화/경제적 기반 모두 이러한 역사적 유산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정부를 중심으로 '원주민들과의 화해와 치유의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2015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TRC)를 통해 정부, 지역사회 그리고 종교단체를 화해의 길로 안내할 수 있는 94개의 행동촉구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비록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현재 원주민들이 그 상처를 치유하고 캐나다 사회와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헌법적 구조에서 더 정당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지원을 하고자 하는 노력과 조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공생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내놓으면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바로 "화해(Reconciliation)"라는 단어인데, 원주민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화해의 핵심은 "원주민들의 자치 결정권"으로 이중에는 원주민들의 자치 구역의 토지 사용 / 인권 / 문화에 대한 자기 결정권 또한 포함되어 있다.
2022년 3월 30일, B.C. 주는 원주민 권리 선언법 시행 계획(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Act Action Plan)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앞으로 5년 동안 원주민들과의 협력 및 협의하에 원주민들이 자기 결정권과 자치 정부의 권리를 완전히 행사하고 누리며, 그들만의 제도, 법, 통치 기구 및 정치, 경제, 사회 구조를 개발하고 유지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최근 캐나다의 경제/문화/정치 각 분야에서 원주민들의 역할과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원주민들이 소유한 땅을 이용한 부동산 개발자로서의 역할은 현 캐나다 정부가 당면한 주택 공급 부족이나 집값 안정등과 같은 문제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점점 강조되고 있다. 기존 부동산 개발회사들과의 합작 형태의 개발을 비롯하여 원주민 공동체가 직접 개발하거나 주도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통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활용하여 지역 사회의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사실 First Nations가 소유한 땅의 개발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이다. 이러한 개발은 원주민 공동체의 경제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문화적, 환경적, 그리고 사회적 가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역사적인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과거의 부끄러운 과오를 다시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협력이 필요하다.
협상과 결정 과정에 원주민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보장하고, 그들의 문화적 및 환경적 우려를 고려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원주민 땅의 개발에 대한 정당한 권리와 자원, 이익의 분배등을 통해 원주민 공동체의 사회적인 역할을 격상하고 미래를 함께 준비해 나가는 사람들로서 공생의 주체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진정한 화해를 위한 훌륭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