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제주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묻는다면, 예전에는 화창한 날씨 속 푸른 바다와 한라산이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질문을 받는다면, 표선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떠오른다고 말할 것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2021년 8월 금요일 퇴근 후 남편과 함께 2박 3일 코스로 갑자기 제주도로 떠났다.
갑자기 가게 된 여행이었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에 들뜨고 기분 좋았다.
또, 얼마 만에 제주도인가 싶은 마음에 가슴이 아주 콩닥콩닥거렸지만 마스크 잘 쓰고 개인위생은 더 조심해야 한다 생각하니 들뜬 기분은 어느새 가라앉고 잠시 겁이 났다.
2박 3일이긴 했지만, 금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가서 여행할 시간은 1박 2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날씨 또한 우리 편이 아니었다.
비는 엄청나게 내렸고, 결국 토요일에 이것저것 일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토요일 밤 혼자 이리저리 일요일 동선을 다시 확인해 봤다.
남편은 이미 지쳐서 일요일은 숙소에서 늦게 체크아웃하고 공항 근처에서 놀다 비행기를 타자고 했지만, 난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자투리 시간이라도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고 문득, 제주도에 오기 전 몇 달 전 EBS 채널에서 감명 깊게 본 <건축 탐구 집>에서 본 "폐교를 미술관으로 만든 김영갑 작가"에 대한 영상이생각났다. 가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
표선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성산에 있는 숙소와 편도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두모악의 오픈 시간은 9시, 숙소 퇴실은 11시다.
그렇다면 내가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8시 30분 출발해서 두모악에 9시 도착 후 한 시간 갤러리를 보고 10시쯤 숙소로 출발한다면 숙소에 10시 30분에 도착하면 퇴실 11시까지 꽉 채워서 나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
뭔가 멋진 계획을 세웠다는 생각으로 들뜬 마음 진정시키고 미리 짐들을 정리해두었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미리 짐을 더 정리하고 두모악 가는 길도 내비게이션으로 점검하고! 아직 잠들어 있는 남편에게 전날 내 계획을 말했지만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두모악 다녀올게!"
아침 8시 30분 숙소에서 표선으로 가는 길, 해안 도로를 이용해서 두모악까지 가는 길을 세팅해 놓고 운전을 시작했다.
세상에.. 일요일 이른 시간이지 도로에는 나 밖에 없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고 전날 밤까지도 요란하게 내렸던 비는 그쳐서 일요일 아침 환하게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뭔가 홀가분하고 자유로움이 마구 느껴지는 감정이 마구 솟구쳤다.
혼자 여행에 이런 재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흥겨웠고 이 흥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더 배가 되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노래와 함께 멋진 해안 풍경을 볼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고 그 상황 속 나까지 너무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빠듯해서 차를 세워두고 풍경 사진을 찍지는 못했고, 오직 내 눈에만 잊지 못할 멋진 풍경을 담기 바빴다.
“이 분위기 이 풍경 평생 잊지 말아야 해! 기억해야 해 보라야!”
그리고 정확하게 8시 58분에 도착한 갤러리 주차장.
표선에 들어서자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차장에는 직원들 차 외에 렌트 차량은 없었다.
우산을 챙겨 내려 입구를 확인하니 대문이 아직 닫혀있고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직원이 문을 열기 위해 나오는 길이었고, 나는 뻘쭘함에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제 오픈이죠!"
직원도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네. 들어오세요."
와.. 감명 깊게 본 그 영상 속 장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내가 첫 손님으로 들어선다는 사실에 온몸에 닭살을 돋으며 혼자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을 지나 폐교를 활용한 갤러리라 규모는 아담했다.
입장표를 구매하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오로지 갤러리 작품과 손님은 단지 나 혼자!
온도 및 습도 조절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 외 간접 조명 아래 김영갑 작가의 작품 외 나만이 이 공간을 모두 독차지하고 눈으로 보고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 한 점 한 점 마음을 담아 천천히 보았다. 물론 진즉에 TV나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그의 작품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특히 지금 휴식기를 갖고 있는 용눈이 오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눈앞에서 보고 있는 실제 오름처럼 가슴 안으로 웅장함이 차고 넘쳤다 실제로 달려가서 당장에라도 보고 싶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김영갑 작가님이 작업 활동하시던 방을 유리 밖에서 확인하는데..
작가님이 쓰시던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는데 주인인 작가님만 안 계신 텅 빈 의자를 보니 마음이 또 찡했다. 사진으로 찍기보다 내 눈에 많은 것을 담아두고 싶었다.
또 다른 편에 갤러리도 한참을 한 점 한 점 보고 또 보고..
양쪽 갤러리 구경을 마무리하고 갤러리 뒤편으로 나가면 무인 카페와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옛날 시골 학교 화장실 위치였고, 외부 모습은 그때 모습을 살려두었지만, 내부는 신식 화장실이다.
무인 카페는 작고 아담했으며 여유만 있었다면 아무도 없는 무인 카페에서 혼자 사색을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이 한정적이라 그곳은 사진으로 담아놓았다.
갤러리를 나서기 전에 여러 기념품 중 고심 끝에 한 권을 구입했다.
아쉬운 마음에 계속 뒤돌아보며 나왔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김영갑 작가님 덕분에 좋은 작품 잘 보고 가요. 다음번에 다른 전시 보러 또 올게요.
서둘러 차를 타니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다시 차를 타고 숙소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갤러리에서 느꼈던 감정과 감상한 작품들을 떠올리며 창밖에 내리는 비 오는 풍경이 내 마음을 완전히 우수에 젖게 했다.
숙소에서 갤러리 갈 때보다 감성적으로는 돌아오는 길 너무 좋았고, 길이 더 짧게 느껴졌다.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두모악을 잘 보고 늦은 오후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탑승 대기자들은 다들 면세점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난 의자에 앉아 두모악에서 구입한 책을 꺼내서 다시 한번 작품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