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쨍 빛나며 넘치는 열기로 그늘 하나 없는 모래사장을 아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글거리는 햇빛을 피해 시원한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맨발로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 발바닥에서 뜨거운 모래 온도가 순식간에 전달되어 “아 뜨거워!” 외친다.
발을 까치발로 세워 조금이라도 뜨거운 모래를 덜 밟고 다급하게 뛰어들어가 바닷물에 얼른 달궈진 발을 담근다.
바다에서 한참을 놀다 바닷물에 팅팅 불어 서늘해진 발바닥으로 뜨거운 모래를 밟았을 때 뜨거운 열기는 발바닥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고 보았을 해수욕장의 모습이다.
이 모습을 떠올리면 난 어김없이 어린 시절 해수욕장 뜨거운 모래에 닿았던 온도와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수영복을 입고 밟은 모래에서 느껴진 따뜻한 온도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온도를 느낄 때 함께 했던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운동회 때나 볼 듯한 큰 천막을 두 개나 세웠고, 한쪽 구석에는 활활 타고 있는 불이 솥단지를 달구고 있고 그 솥 안에는 무언가 맛있게 요리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큰 대야가 있고 그 안에는 사람 수만큼 많은 그릇과 식기 도구들이 잘 정리되어 담겨 있다. 또, 서너 개의 아이스박스에 차가운 얼음과 함께 반찬, 수박, 참외, 생수, 음료수 그리고 술이 담겨 있었다.
주방에서의 엄마들 흔적이 고스란히 모래사장 위에 옮겨져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친척 어른들이 둘러앉아 식사 중이셨고, 그 옆으로 아이들을 위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은색 쟁반에 큰 닭 한 마리가 하얗게 속살을 보이고 누워있고 소금과 김치 그리고 아이들 수만큼 밥이 담긴 밥그릇과 수저 젓가락이 빙 둘러 놓여 있었다.
한참을 바다에서 놀다 나온 우리는 젖은 몸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얼른 자리 잡고 앉아 보니 정말 수건 돌리기 놀이하듯 빙 둘러앉은 모습이었다.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의 김치를 올려 한입 먹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살 뜯어 소금에 찍어 한입 먹고 또 닭살을 한 점 집어 김치와 같이 먹고~ 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꿀맛 같은 점심이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니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평소 무서웠던 친척 어른도, 조용하시던 할아버지도, 한껏 들뜬 목소리로 윷놀이를 즐기고 계셨고, 던져진 윷의 결과가 나올 적마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야유와 환호 그리고 자기편의 승리를 위해 어떻게 말을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두서없이 시끄럽게 들렸다.
빛나는 햇살과 함께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는 해수욕장에 왔을 뿐인데 어른들 역시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들이다.
어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오빠 한 명이 “내가 먼저 간다~” 하고 바다로 뛰어가니 남은 우리 모두 새끼 오리들처럼 우르르 바다로 뛰어갔다.
한참을 바다에 내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바다인 건지 모를 정도로 놀았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 가족 중 어느 한 명 찡그린 얼굴 없이 모두 완벽히 기분 좋게 행복했던 휴가였다. 해수욕장 그곳의 기억을 떠올리니 옹기종기 모여 밥 먹고 시끌벅적했던 그 순간의 열기와 표정들 그리고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여행의 기억은 여행 계획보다 그 분위기 풍경 모습이라 하지 않았던가.
내가 기억하는 해수욕장에서 가족의 모습.
이는 럭셔리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바다 여행도 아니지만, 그날 뜨거웠던 모래가 따뜻한 모래로 달리 느껴졌던 온도 차처럼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간 여행이었지만 모두 아이들 같았던 그 모습이 어린 내 기억 속에 깊게 남겨져 있는 건 아닐까.
해수욕장에서 가족들이 모여 먹고 놀고 웃는 풍경이 잔상으로 이렇게 오래 기억되는 것을 보니 내게 여행은 이렇게 행복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