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정말 기대했는데..
7월 말 응모했었던 공모전이 발표가 미뤄졌고, 발표 예정일은 9월 28일쯤이라고 했다.
하지만 9월 23일 퇴근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 보았다.
혹여 나만 빼고 다 아는 건가 싶은 이런 예감을 잘 맞는다.
당일 결과 발표가 났고, 나의 결과는 똑떨어졌다.
분야별 1편씩 선정되는 거라 군더더기 없이 그냥 똑떨어진 것이다.
사실 이 공모전에는 처음 도전했지만 느낌이 좋았다.
뒤늦게 알게 된 공모전임에도 불구하고 날 위한 공모전이 아닐까 싶은 설레발 만렙의 기분까지 느꼈다.
그런데 나는 똑떨어진 것이다.
십여 년 전쯤 스키를 원 데이 클래스로 배운 적이 있다.
그때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바람 쌩쌩 부는 높은 언덕에서 올라온 보람을 느낄 틈도 없이 단번에 쌩하고 내려오면서 다시 줄을 서고 리프트를 타고.. 그러다 엉덩방아를 찧고 간혹 잘못하면 내려오는 길 반지르르한 눈길 옆으로 혼자 처박히기도 했다.
이때 난 이 스키가 뭐가 재밌냐고 선생님에게 투정 부리듯 물었다.
선생님은 내게 미끄럼틀 타고 내려오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건데 왜 모르겠냐고 내게 되물었다.
미끄럼틀은 계단으로 올라갈 적에 내 몸뚱이 내가 잘 챙겨 올라가면 되고, 가끔은 미끄럼틀을 역주행으로 아주 스릴 있게 올라갔다가 엉덩이를 대고 차분히 쌩~ 하고 내려오며 재미도 느낄 수 있는데..
스키가 미끄럼틀보다 재밌다고? 차라리 겨울엔 눈썰매를 타겠다 싶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난 원 데이 클래스 이후 스키를 타겠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고, 그다음 날 난 운동회를 끝낸 다음날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근육통으로 하루 종일 누워있었고, 엉덩이는 시퍼런 멍이 들어 삼신할머니가 내 엉덩이를 밤새 치고 가셨나 싶을 정도였다.
난 개인적으로 스키에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이후 스키를 탄 적도 없고 누군가 스키 타러 가자고 하면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다.
심지어 속으로 차라리 난 눈썰매를 타겠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애써 쓴 글로 응모했는데 이번 공모전에 똑떨어진 다음의 이 기분은 무거운 스키 장비를 이끌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가 바로 엉덩방아 찧으며 내려온 기분이다.
몸과 마음이 훅 나락으로 떨어진 듯.. 기대가 컸던 만큼 이 아쉬움도 큰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수상작과 수상작의 심사평까지 읽어보았다.
수상작을 읽어 보니.. 요즘도 한자와 사자성어가 난무한 어려운 에세이를 선호하는가 싶은 질투심이 생겼다.
심사평에는 "신인"과 "가능성"의 무게를 두고 심사했다고 한다.
평소 에세이를 좋아하고 월간 에세이를 구독하는 사람으로 이런 글을 쉽게 읽고 좋아할 사람은 일반적이진 않을 것 같은 데라는 반문이 들었다.
치즈군에게 수상작과 심사평을 건네주며 읽고 어떤 느낌인지 말해 달라 했다.
치즈군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이었다.
"한 단락을 읽는 것도 여러 번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글이 뽑혔다고? 신인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생각한 신인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자기야.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글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그냥 무시해."
평소 내 글에 대해 편집자나 독자의 입장에서 콕 집어 주는 치즈군이 이렇게 말해줘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위로에 스키 타고 엉덩방아 찧으면 내려온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사실 내 글이 수상작보다 뛰어나다는 건 매우 개인적인 견해니깐 장담을 못 한다.
하지만 고심 끝에 응모한 글이었기에 높은 애정도를 갑자기 낮추기엔 어려워 서운함이 큰 것 같다.
그리고 또 이 공모전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상금이었다.
혹여 내가 이 상금을 받는다면! 행복한 상상으로 내가 더 혹했고, 웃프게도 날 위한 것이라고 심한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니 쉽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이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공모전 결과 발표를 확인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받아들여야 할 현실을 인정하니 냉정함이 돌아왔다.
그래!
내가 상금에 눈이 멀어 내 수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도전했던 것이 분명하다.
마치 스키를 원 데이 클래스로 배우고 상급자 코스에 가서 몸에 적응이 덜된 스키를 타고 높은 언덕 코스에서 한 번에 쭉- 미끄러져 내려와 눈 뭉치에 처박힌 것이다.
이 공모전을 대하는 내 마음과 자세가 너무 들떠있었고, 좀 더 신중했어야 했던 것이다.
올해는 이렇게 떨어졌지만, 내년에는 달라진 모습과 자세로 재 도전해 봐야겠다.
이때는 꼭 이 기분을 다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