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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May 10. 2024

40, 반평생을 사랑한 게임을 잃었다

반려 취미 찾기 (1)

 스무 살, 어른이 되었다는 설렘으로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젊음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했던 시절 PC게임을 접했다. 미세한 조작 하나로 승패가 오가고, 마지막 한 발에 쓰러지는 상대편을 보면 온몸이 짜릿해졌다. 도파민에 휩싸인 나는 친구들의 나오라는 연락도 무시하고 두문불출 게임에 매진했다. 


 당시 서비스하는 대부분의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만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는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보스 몬스터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해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몇 날 며칠을 시도했다. 

갖은 고생 끝에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렸을 때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희의 소리를 질렀다.


 WOW는 스토리가 좋기로 유명했었는데, 어릴 때부터 책을 끼고 살았던 나는 활자로 표현된 책과 달리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스토리에 흥미를 느꼈다. 유저들에게 스토리를 인지시키기 위해 게임의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게임 업계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시나리오 기획자 직무로 입사했다. WOW처럼 유저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게임에 녹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임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나의 게임 사랑은 여전했다. 퇴근하고 PC방에서 실론티 한 캔을 마시며 게임하면 그곳이 무릉도원으로 느껴졌다. 

 하루 일과를 끝냈다는 뿌듯함과 마음의 평안함이 몸의 긴장을 풀고 진정한 휴식을 가져다주었다.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PC의 시대를 지나 모바일로, 콘솔로 게임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나 역시 도구만 바뀌었을 뿐 열성적인 게임 유저이자 게임 기획자로 게임을 사랑했다. 

 그렇게 게임에 대한 외골수 사랑은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평생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징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의 추천 게임에도 이전과 달리 밍그적거리다가 시작했고, 게임 팩만 사두고 손도 대지 않은 일이 잦았다. 그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친 거라고 여겼다.


 퇴사와 함께 지인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여전히 모바일 게임을 즐겼고, VR게임기를 사면서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일주일도 채 못 가서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오랜 친구이자 밥줄이었던 20년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게임의 패턴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고, 더 이상 게임 스토리의 시스템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익숙함에 지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연인들의 이별 원인을 찾기 힘든 것처럼 나의 게임 사랑이 왜 끝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상에서 게임이 떨어져 나간 나는 망망대해의 돛단배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평생을 집순이로 살아왔건만 집에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설상가상 도와주던 지인의 사업조차 원하던 대로 풀리지 않아 앞으로 뭘 하고 먹고살아야 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게임과 더불어 돈독한 친구였던 책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재의 나에 대한 한심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뇌가 글자를 튕겨내는 기분이었다. 심신을 달래주는 든든한 조력자였던 게임과 책을 잃은 나는 전쟁터 한 복판에 숟가락을 방패 삼아 알몸으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심장과 뇌를 갉아먹을 때쯤, 무엇이라도,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반평생을 해온 몸에 밴 습관을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일상의 자극점이라도 있어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아보기로 했다. 게임 대신 사랑할 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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