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라이팅에서 벗어나자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출퇴근이 3시간 걸리고,
일은 더럽게 재미없고,
급격하게 늙어가고,
퇴근 후에 강아지 산책 시키면 잠들기 바빴을 뿐이었다.
이직한 회사는 업계에 들어올 때부터 꿈에 그리던 팀이었는데 현실은 내가 거쳐온 그 어떤 조직보다 주먹구구식의 엉망진창 프로세스였다.
작은 회사의 팀장보다 훨씬 능력 없으면서 정치질만 하며 자신이 능력 있는 줄 아는 최악의 상사를 그때 보았다.
어차피 자취하는 거 회사 근처로 이사라도 했으면 통근 시간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회사에 정이 안 가니 살던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만 34살, 60살, 78살 때 사람은 확 늙는다고 한다.
물론 차곡차곡 매년 늙어가지만 해당 나이 때 두드러지게 노화가 찾아온다나.
내 기분 탓이 아니었던 거다.
그전까진 화장이 '뜬다'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뭘 쓰든 다 똑같은데 왜들 까탈스럽게 굴지라고 생각했다.
35부터 뭘 쓰든 다 뜨더라.
안 뜨는 화장품을 찾느라 깨나 고생했었다.
이제는 인간적인 매력도 없고 상큼 발랄한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이대로 회사에 절어 살다가 인생 끝나겠구나,
정말 인생 의미 없네 싶었다.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전과 다르게 나 좋다는 사람이랑 연애도 해보고,
회사 뛰쳐나와서 다른 업계에 발을 디뎌 보기도 했다.
뭐, 결론은 둘 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고작 35가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니.
돌이켜 보면 우리는 늘 현재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벌써 20대 중반이라니, 이제 클럽에 놀러도 못 가겠다.
벌써 30이라니, 이제 좋은 시절은 끝났구나.
벌써 35이라니, 이제 정신 좀 차려야 할 텐데.
벌써 40이라니, 이제 사는 게 재미가 없구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노화가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포인트가 올 때마다 스스로 나이라이팅을 하며 살았다.
정작 생각은 20대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나뿐 아니라 50대인 분도, 60대인 분도 똑같은 이야길 한다.
아직 20대 인 것 같은데 어느새 60대가 되어있다며 나보고 아직 젊어서 부럽다는 말을 곁든다.
젊다고?
젊음은 상대적이다.
스무 살 때의 나는 세 살 많은 사람에게도 아저씨라고 불렀다.
세 살이나 많다니! 아저씨지! 라면서.
고작 스물세 살에게.
지금의 나는 서른 살을 보면 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나이가 정말 많다고 여긴다.
20대와 비교를 하면 많은 나이긴 하다.
앞으로 그네들이 비교해야 할 나이가 20대가 아님에도 겪어온 게 20대뿐이라 그렇게 밖에 비교를 못 한다.
40을 찍은 기념으로 나이라이팅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현재가 남은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 시절이다'
이 말은 아주 예전부터 흔히 들어왔고 공감하던 말이었으나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 뒤로도 계속 나이라이팅을 해왔던 걸 보면.
서른다섯의 나에게 그때가 얼마나 좋은 시절인데 그딴 생각을 해!
라고 일갈해주고 싶은 마음을 오롯이 품고 산다.
나이라이팅을 해대다가는 5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같은 말을 할 거 같아서.
주변에서 '내 나이에...'로 시작하는 말을 꺼내면 그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간곡하게 얘기한다.
내 얘기로 그 사람들이 생각을 바꿨는지 안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나이부터 '내 나이에...' 하다가는 평생 '내 나이에...' 하다가 눈 감게 될 것이다.
평생 네가 젊을 줄 아느냐,라는 엄마의 말.
젊은 날에는 젊음을 모른다, 는 노래 가사.
역시 정말 젊음이 퐁퐁 솟아나던 시절에는 몰랐다.
그나마 젊음이 슬슬 빠져나가는 시절에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빠져나가는 걸 느끼니 깨닫게 된 거겠지.
이런 게 연륜인가 싶다.
싱글들은 무엇이든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나이라이팅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하고 싶은 건 그 누구의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게 싱글의 특권이다.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특권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