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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May 12. 2024

왜 나는 그토록 게임을 사랑했을까

반려 취미 찾기 (2)

사랑하던 게임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앞서 무엇이 그토록 게임을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알아야 했다.

식음을 전폐하며 수십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게 만든 원동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랑할 대상을 찾기 위해 나를 심도 있게 파헤쳐 보기로 했다.


우선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았다.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부터 새벽 1시 이전에 잠들어 본 적이 없었다.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책이었다.

한 번 책 속에 빠져드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손에서 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다. 

어린아이 입장에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책 정도였다. 

그중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건 책이 유일했다. 

추리소설 전집이든, 세계문학전집이든, 위인전이든 부모님이 사다 주는 책들을 닥치고 읽어댔다. 


엄마아빠 몰래 작은 스탠드만 켜놓고 침대 속에서 책을 읽던 아이는 책 속의 주인공이 벌이는 버라이어티 한 사건들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언뜻 보면 모든 부모들이 원하는 책벌레 아이 같지만 실상은 호기심이 가득하고 궁금한 걸 참지 못했을 뿐이었다.

눈이 활자를 촬영하고 뇌가 편집을 때린 활극 한 편이 매일 밤 머릿속에서 상영되어 책 속의 주인공들과 모험을 떠났다. 


머리가 제법 커진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가 사다 놓은 대하소설을 읽었다. 

대하소설의 흡입력 있는 스토리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성인이 된 이후는 부모님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밤 새 책을 읽어댔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특징이 어우러져 지독하게도 책을 사랑했었다.

게임을 만나기 전까지는.  


20년 전, 당시 게임은 꽤 신문물에 속했다. 

요정 캐릭터가 마우스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것조차 신기했었던 시절이었다. 

들풀이 바람에 날리고 구름이 떠다니는 게임 속의 세계를 뛰어다니는 게 마냥 신나서 의미 없이 게임 내 사냥터와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모니터 안의 거대한 몬스터의 위용 있는 모습에 탄성을 지르고, 그런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의 강렬한 성취감에 전율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밀려오는 감동과 보스 몬스터가 쓰러질 때의 희열.

머릿속에서 재생되느냐, 눈앞에서 재생되느냐의 차이지 게임과 책은 나에게 비슷한 자극을 주었던 셈이다. 

게임에 열정을 쏟아붓던 시절에도 책을 읽긴 했지만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황에 한정되어 있었다.


종합해 보면, 새롭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엔딩이 있는 콘텐츠가 사랑을 줄 만한 후보라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OTT 서비스인데, 이미 이건 이미 질리도록 보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나는 콘텐츠가 없다. 

그렇다고 게임을 했던 시간을 멍하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특징을 알고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만 막막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찾을 건데.

평생 집안에서 굴러다니던 사람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히 내키지 않았고, 나는 어떤 생각이든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타입이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다면 배우고 싶었던 취미를 배우러 다니는 게 좋은 선택일 것이다.

내가 게임을 하다가 게임 회사에 들어간 것처럼 취미가 인생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몇 번의 실패를 겪은 후라 여유롭게 교습비를 낼 상황도 아니었고, 열정적으로 배우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나의 작은 세상과 좁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동안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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