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근처에도 있을 걸, 당신 집은 물론이고.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첫 산행은 북한산 둘레길이었다. 사실 지인의 안내로 가볍게 떠라간터라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내려오는지, 어느 구간으로 어떻게 가는지 같은 코스 선정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사내 등산 동호회 총무도 아니고 아이들과 가는데 코스 선정이 필요한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를 이끈 곽 선생님은 역시 달랐다.
말하자면 전문가 포스가 폴폴 난다고 할까.
먼저 아이들과 함께 갈 적당한 높이와 난이도의 산을 정하고, 기억을 더듬거나 서치를 통해 경사가 너무 급하거나 바위를 오르는 등의 위험한 코스가 아닌 무난한 코스를 고른다. 그 후 함께하는 지인들의 의견을 물은 뒤 확정. 만약 가는 길에 예상치 못한(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생기더만...) 일이 발생했을 때 우회할 길까지 인지해 준비하시는 것 같다(옆에서 지켜본 지극히 필자 생각임). 그러다 보니 산을 전혀 모르는 등린이 나는 언제나 샘 의견에 대찬성했었다.
이런 내적 갈등 과정을 거친 뒤 선정된 북한산 둘레길은 시작부터 긴 오르막 계단의 연속이었다. 내가 산에 왔지 계단을 오르려고 왔나 싶은 생각이 들 즈음 뷰포인트에 도착하더라. 잘 가꿔진 둘레길 데크와 계단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려, 산의 여러 모습 그러니까 사계절 산의 모습을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아름다운 고통이라고나 할까. 힘든데 고개 돌리면 엄청 아름다워 자꾸 다리를 내딛게 되었다. 산에 처음 오른 아이는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제 폰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잘 다듬어진 계단이다 보니 오랜만에 산에 오르는 엄마와 달리 아이들은 처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엄마를 앞장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특별히 위험한 게 없으면 앞서가는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 본인의 페이스는 해봐야 찾을 수 있으니까. 긴 계단을 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하니 아이들 사이에서도 본인은 계단이 좋네, 흙길이 좋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더라.
북한산 둘레길은 사계절 많은 인구가 찾는 곳임에도 잘 관리가 되고 있어 특히 아이들과 다니기에도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이다. 전체 71.5km 중 서울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한 부분은 2010년 9월 7일 45.1km를 개통하고 2011년 6월 30일 나머지 25.8km 구간을 개통하였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걷는 둘레길은 물길, 흙길, 숲길과 마을길 산책로의 형태가 각각의 21가지 테마를 구성한 길이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보존하는 길, 그리고 역사와 문화,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설명 출처: 북한산 국립공원).
우리가 다녀온 코스는 서울 둘레길 8코스 북한산 구간(서울 둘레길과 북한산 둘레길 합류점)에서 시작하여 북한산 둘레길 제8구간 구름정원길의 일부를 걸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오르기 시작하여 중간중간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음에 다리 아픔도 잊을 수 있었다. 한 겨울이었음에도 푸른 소나무가 가득했고 낙엽을 밟을 수 있는 흙길도 중간중간 있어 걷는 재미가 더해졌다.
나 같은 등린이는 잘 정돈된 데크가 걷기 좋지만 곽 선생님처럼 산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아마도 일반 흙길과 산길이 훨씬 더 걷기 좋을 것이다. 지난겨울 열두 번을 다녀오며 선생님이 좋다고 하신 길은 모두 사람의 손이 덜 탄 산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어 으스스한 곳이 아닌 적당히 사람이 다니며 그 사람들에 의해 다듬어진 자연스러운 길, 그 길이 진짜 아이와 가기 좋은 길이리라(역시 전문가는 달라).
겨울에 아이와 산을 갈 때는 너무 외지지 않고 적당히 사람이 오르내리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버려긴 유기견이 산에서 살며 들개가 되거나, 개체수를 늘린 멧돼지가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등산객을 공격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갈 때는 앞 뒤로 어른이 지키고 적당히 사람이 있는 곳을 선택하자. 그런 면에서 북한산 둘레길과 서울 둘레길 같은 곳은 대만족이다.
조금만 걸으면 산이 있어 물통을 챙겨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언제든 쉽게 갈 수 있는 둘레길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멀리 차를 타고 산을 타러 가지 않아도 산이 주는 무수히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집 근처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잘 다듬어진 둘레길이 하나쯤은 있을 테니 미루지 말고 이번 주말 당장 아이와 함께 올라보자.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이와 함께 가는 산은 조심스럽긴 하다. 우리에겐 없어진 산길도 찾아줄 전문가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초보자는 두려울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선택에 도움을 주고 조심해야 할 것과 미리 알고 가면 좋을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등산, 트레킹, 산행, 둘레길 걷기 등 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나에게는 그게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산이 가진 좋은 기운을 산을 오르내리며 얻고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산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제대로 해본 적도 없기에 산을 즐기는 분들이 보면 용어도 뒤죽박죽이고 개념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이 있더라도 산을 막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의 이야기이니 널리 이해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