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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Jun 19. 2020

아이들도 산에서 인생을 배운다 2

오르락내리락 꼭 인생 같지

열두 번의 산행 동안 아이들은 500m 정도의 정상 봉우리들에 올랐다. 산에 좀 다닌 어른들은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낮은 산이지만 아이들에게 모든 산이 다 처음이었다. 체력이 선천적으로 좋아 앞서서 성큼성큼 걷는 아이도 있었고, 체력이 약해 부모와 함께 천천히 하지만 마지막까지 오른 아이도 있었다. 아침잠이 많아 매주 힘겨웠던 아이도 있었고, 경험이 많아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도 산을 오르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부모들이 다음 산을 결정하고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모두 손사래를 치곤 했으니까. 그래도 군소리 없이 아침에 일어나 매주 만났던 건 부모의 노력도 있지만 아이들의 의지와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느낌과 성취감을 스스로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해도 모든 아이들이 기특하다! 


산을 오르는 길은 겉에서 보면 혹은 멀리서 보면 그저 묵묵히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산을 직접 걷게 되면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오르막 길에도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 길에도 오르막이 있다는 것을. 산을 처음 타는 아이들은 그것도 신기했나 보다. 


"분명히 산에서 내려가는 건데 왜 여긴 오르막길이죠?"

큰 아이가 둘레길 말고 첫 산을 오르며 곽 선생님께 투덜댔다. 선생님은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건넨다. 


"산을 오르는 건 인생하고 똑같은 거 같아. 힘든 오르막인 줄 알았는데 걷다 보면 내리막길도 있고, 편한 내리막길이었는데 갑자기 오르막이 나타나기도 하지. 살다 보니 우리 인생 하고 꼭 닮았더라. 하하하"


나도 덩달아 웃으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너무나 공감했기 때문이다. 

인생사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고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는 것을 나조차도 성인이 되어서 직접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지금 하는 일이 힘들고 고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고 가다 보면 행복한 순간도 있으며 즐거운 시간도 생긴다.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시기라 생각되는 때라도 매일 좋은 것이 아니고 작은 실패와 고난도 도사리고 있다. 본인이 결정한 정상의 순간까지는 그것이 오르막이던 내리막이던 묵묵히 해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인생을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사실 시도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직은 좋은 것만 보고 즐거움만 겪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인생이라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잠시고 준비하기 위한 고된 시간은 길고 좌절하고 힘든 시간도 꽤 많다. 하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직 미처 느끼지는 못했을 나이. 아이는 그것을 등산을 하며 본인이 직접 걸으며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세상에 발을 딛고 알아가고 배우는 아이에게 인생이 어쩌고 라떼가 어쩌고 설명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 그 시간은 부모의 잔소리 시간이 되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같이 산을 오르내리며 쌓인 경험들이 모여 아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인생을 알아가는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먼저 한 질문이지만 곽 선생님과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그날, 당시에는 아이가 이 깊은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든 산행을 끝내고 어느 날 문득 동생에게 한마디 하는 아이에게서 엄마는 또 뭉클함을 얻었다.


"해봐야 알지, 그걸 어떻게 알아? 하다 보면 힘들기도 하고 좋기도 한 거지 뭐, 맨날 좋기만 하냐!"

아이는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꼭 산에서 배웠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아이의 변화는 처음 느끼는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졌다고나 할까. 산을 오르지 않고 정상의 아름다움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아이들은 작은 발로 조금씩 땅을 딛고 올라 정상에 도착해야 맛볼 수 있는 그 성취감과 땀의 맛은 인생의 어떤 것보다 값질 테니까.



산에서 배운 게 어디 한 두 가지인가... 그 짧은 산행들에서 나도 아이들도 한 뼘 성장한 건 두말할 나위 없다. 몸으로 배운 것은 쉬 잊히지 않는다. 나와 아이들이 산에서 배운 것들이 다른 부모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배운다 시리즈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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