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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Sep 18. 2020

체력부자 만들기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체력을 저금하길

밤을 새우고 일을 해도 혹은 놀아도 하루 정도는 너끈했다.

타고난 체력이 좋은지 알았고 체력을 위해 운동을 따로 할 생각은 못했다. '체력 = 운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운동이라고는 모르는 빼빼 마른  잡지사 선배들은 밤새서 원고 쓰고 다음날 촬영을 갔고, 운동 마니아 학교 선배는 밤새서 놀 줄을 몰랐다. 체력은 그저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알겠지만 육아는 체력이다. 유아 때는 먹이고 챙기는 것도 엄마 체력의 결과이고, 소아 때는 주말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부모 체력의 결과이다. 나의 체력이 나를 위해 쓰이기보다 아이를 위해 쓰이긴 하지만 엄마는 괜찮다. 육아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니까. 책임감과 뿌듯함 그리고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에 대부분 이겨낼 수 있다.


육아를 하다 보니 좋은 체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를 거쳐 백일의 기적을 맛보고 이어지는 육아의 전쟁 속에서 나가떨어지지 않은 나는 타고난 체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퇴근 후 육아 출근 일상을 또 버티다 보니 나의 체력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그렇게 몇 년 전 시작된 달리기와 약간의 근력운동은 다시금 나의 체력을 조금씩 되돌려주었다.


이제 밤을 새우며 일하거나 놀 수는 없다. 하지만 마라톤 10K를 매년 완주할 수 있고, 새벽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으며 등산 후에 근육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매일 2~3만 보 씩 걷게 되는 여행도 계속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의 체력이 엄마의 체력을 닮지 않았을 때 생긴다. 엄마는 엄마의 체력이 기준이 되어 스케줄을 짜게 되는데 번번이 아이가 힘들어하면 준비한 엄마는 마음이 복잡하다. 문제점을 찾다가 좀 서운해지기도 한다.


아이들과 여행에서 나는 새벽에 일어나 호텔 런닝머신을 달리거나 아침 산책을 한다. 캠핑가서 새벽이슬과 아침 해를 보며 혼자 산책을 하고 커피를 내린다. 한침의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을 깨운다. 여행에서 좋은 내 체력에 맞춰 일정을 짜면 일정의 1/3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다보니 이젠 막내 체력에 맞춰 하루 일정을 짜고 남는 내 체력은 아침운동과 정리 등으로 써버린다. 나름의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겨울, 매주 산행을 가며 아이들이 따라와 줄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물론 아이가 함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산행을 준비했지만 기초 체력이 없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무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아이들이 나와 함께 가는 산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몸을 사용하는 운동에 빨리 눈뜨길 바랐다.

 

타고난 체력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체력의 한계는 넘어설 수 있다. 체력은 그저 운동신경이 좋고 빠르고 힘이 좋은 것을 말하지만은 않는다. 체력은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눠져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게 된다. 몸이 힘들고 기력이 딸리면 정신적으로 함께 지치고 매사에 흥미를 잃게 된다. 반대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여 신체적인 능력을 저하시킨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들이 체력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100M 달리기는 느리지만 마라톤 10K는 같이 완주했으면 좋겠다. 바다에 빠졌을 때 물에 떠서 버틸 수 있거나 수영하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고 인라인 타고 보드나 스키를 타고 클라이밍과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주짓수와 태권도를 배우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순례길 걷는 여행을 떠나고 영남알프스와 지리산 종주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고, 몸을 사용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체력부자는 이 모든 것들을 즐기면서 스스로 얻게 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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