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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Jul 15. 2020

초등생의 성취 미학

해야 하는 일을 해낸다는 것

코로나 19로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은지 벌써 5개월이다. 매일 뉴스를 보며 교육부 소식을 귀 기울여 듣고 집에서 해내야 하는 것을 정리하고 체크하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학원도 가지 않는 아이들은 집에서 정말 다양한 일을 해내야 한다. 스스로 정한 하고 싶은 것과 부모와 함께 정한 하기로 한 것 그리고 어쨌든 꼭 해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초등생도 고민을 하고 취사선택을 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겨울방학부터 12주간 다녀온 산행은 아이에게 꼭 해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한번 산에 다녀와서 뿌듯하고 좋았던 기분은 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었던 경험은 아이에게 하기 싫은 일이었을 터. 매주 나에게도 산행이 힘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등산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어디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밟은 돌이 고정되지 않아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고, 등산로를 체크해둔 표지판이 잘못되어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지 모를 일이다. 버려진 유기견이 들개가 되어 나에게 전력 질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등산화가 망가져 짊어지고 내려와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무사히 산행을 잘 마치고 내려오면 그 성취감은 정말 크다. 둘레길 코스 하나를 완주하더라도 아이들은 한라산에 다녀온 듯 큰 성취감을 얻었다. 오르면서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막상 정상에 오르면 모든 힘듦이 사라지고 감동의 시간을 얻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다.


아이와 등산을 하며 꼭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성취감이었다. 많은 육아서에서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고 전한다. 그 작은 성취감을 위해 주말마다 부모들은 아이들 데리고 여기저기 다닌다. 작은 작품을 완성하고, 악기를 배우고, 운동경기에 참석한다. 나 역시 아이의 성취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주말 계획을 세웠던가.


부모들이 정한 횟수의 등산을 해내야 한다고 했을 때 아이들은 매주 거부했다. 사실 날짜가 지날수록 횟수가 계속 증가했기에 매주 아이들의 동기를 재확인시키며 '오늘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이제 막 십 대가 된 큰 아이는 새로운 배움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본인의 장단점도 어느 정도 깨달아 호불호가 강해졌다. 당연히 힘들고 고된 경험은 뒤로 미루거나 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이라면 당장 해버리는 게 낫다. 지금 포기해버리면 언젠가 다시 해야 할 테니까.


최근 큰 아이와 가장 부딪치는 부분은 바로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해내는 것'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등산은 그 날의 목표가 정확히 있고 과정은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되는 일임에도 번번이 좌절했다가 끝내 성취가 된다. 하지만 공부나 배움은 끝이 없고 과정도 지지부진하다. 요즘엔 시험도 없어 결과로 성취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엄마, 왜 틀린 수학 문제를 다시 풀어야 돼요?" 구구절절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하면서 아이와 수학이라는 산에 오르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도 산이면 언젠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 텐데, 아마도 수학은 그러기 쉽지 않겠지.


그런 면에서 성취감을 얻기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은 아마도 등산일 것이다.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큰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성취감은 말로 설명해서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직접 스스로 겪고 깨닫고 부딪치고 실패하며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했던 많은 체험들은 얼마나 부족한 일이었을까.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일이 그저 걸음을 디디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면 이 정도의 성취감을 얻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좀 안되고 머리가 복잡하다면 가벼운 등산을 가보라고 전하고 싶다. 빠르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가만히 산을 오르는 일이 꽤 정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실은 내 생각을 정리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등산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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