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04월 01일 아침 9시 30분 기차로 아내와 서울 아들 집에 갔다.
어제 아내가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는 아들 가족을 위해 준비한 반찬을 가지고 갔다.
아내는 어제 소꼬리 곰탕, 오징어 무침, 메추리 요리 등
며느리와 아이들이 잘 먹는 반찬을 준비하였다.
곰탕의 양이 많아 무거웠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로 가지고 갔다.
어제만 하여도 며느리와 짱미만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였다.
어제 저녁에 전화하니, 아들과 짱베도 이상하다고 하였다.
아들 집에 가서 집 현관문 앞에 반찬을 두고 아들에게 전화하였다.
아들만 나왔다.
아들도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였다.
짱베가 열이 많이 난다고 하였다.
아내와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나왔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왔다고 하면, 아이들이 나올 것이다.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냉정하게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전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재화훼시장에 갔다.
아내가 꽃나무와 야생화를 사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화훼시장에 가니, 화분에 있는 것만 있었다.
오랜전 젊었을 때 그곳에 갔다.
그때는 차로 갔다.
그때 시장 모습은 생각이 났는데, 어떻게 찾아갔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양재시민숲 역에서 내려서 가니 멀지 않았다.
소매시장은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소매시장에서는 화분에 있는 것만 팔았다.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국제원예가 있었다.
그곳은 내가 인터넷으로 묘목을 산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갔다.
그곳에서 아내가 사기를 원하는 목단, 백일홍, 라일락, 작약 등을 사고,
야생화가 있는 곳에 가서 야생화도 샀다.
소매시장에 가서 수국도 샀다.
아내는 무척 좋아하였다.
아이들을 보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을 꽃을 사면서 기쁜 마음으로 전환하였다.
우리의 기쁜 마음이 아이들의 고통을 적게 하여주면 좋겠다.
4시 가치를 타고 제천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서울에 전화하니, 짱베가 많이 아프다고 하였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제천에 놀러 오고 싶다고 하였는데.
카톡전화로 짱베와 통화를 하려고 하니,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힘이 들어서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