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하루에 한 권!(21일 프로젝트)

by 차티 Chati

2019.09.20 금


이 책을 지금 읽다니. 모든 문장을 몸과 마음 속에 새겨넣고 싶었다.

세상이 멈춘 자리. 지옥 같은 재난과 절망 속에서 인간다움은 무엇이며, 희망은 무엇인가?

절망과 희망을 이렇게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내다니. 힘 들 때마다 이 책이 의지가 되고 힘이 될 것 같다.


순식간에 전 세계에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사람들은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터전을 떠나거나, 버틴다. 또 어떤 이들은 살기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도시와 마을을 약탈하며 폭력의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은 망해버렸고, 지구도 망해버렸다. 그 망해버린 세계에서 희망은 무엇일까?


"모두 나쁘다. 죽지 않고 살아서, 살아남아서, 이곳까지 와서 또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 나쁘고 나쁘다. 살았으면, 그 무서운 것을 피해 살아 있으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러지 않을 수 있잖아. 어째서 망치는 거야. 하루하루 이토록 위태로운 삶을 왜 더 지독하게 만드는 거야."


작가는 그 망해버린 세계에서 불안과 공포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는 재난의 세계와 그들이 회상하는 일상의 세계에서도 여전했다. 그들은 매일 같이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가기만 한다. 그들은 달리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우리만 모르는 해답을 다른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며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린다.

그 불안과 공포를 안고 달리는 이들은 결국 재난 속에 잡아먹힐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멈춘 자리, 지옥 같은 재난과 절망 속에서 인간다움은 무엇이며 희망은 무엇인가.


"그래서 난 더더욱 불행을 닮아가고 싶지 않았다. 삶을 업신여기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어떤 잘못이나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엄마의 죽음도 나의 삶도 견뎌낼 수 없다."


"그런 게 지나의 희망인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거나 벙커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희망.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절망과 희망을 이렇게 아름답고 슬프게 쓴 글이 한국에 있었던가. 어느 글 하나 버릴 게 없다.


소설 속의 지나와 도리, 미소, 류, 건지.

이들은 불안에 휘말려 대륙을 떠도는 이들과 달리, 절망 속에서 꿈을 꾸고,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지금 여기에서 저기, 해가 지는 곳에 있는 여름을 찾아서. 불행을 닮아가지 않고, 삶을 업신여기지 않고, 단 하루를 살더라도 평생처럼 살아간다.


그들의 기적은 바로, 온갖 나쁜 것 속에서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자, 그 가능성을 품은 사랑일 것이다.


오래오래 여운이 남는 소설.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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