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오래된 서고

인터뷰 열 하나

by 홍작

2017년 9월 22일


“전 일에 찌든 직장인이에요.”


열하나님은 이십 대 후반의 사서입니다. 도서관에서 사서가 하는 일이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서고에서 책을 관리하시는 분이래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로망이 있죠. 오래된 책 냄새나는 서고에서 밤새도록 책을 읽는 것. 문뜩 저의 이십 대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땐 저도 책을 너무 사랑해 사람들 발길 적은 서고에서 책을 읽곤 했었죠. 도서관이 끝났다는 사서의 말이 왜 그리 서글픈지. 마치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 기분이었어요. 하여 왜 도서관은 밤새 하지 않냐? 고 묻자 열하나님이 수줍은 듯 미소 짓습니다. 자신도 서고에 밤새도록 있고 싶데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24시간 365일 서고에서 책을 읽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도서관 일이 많데요. 그럼요. 이해하죠. ㅠ


24시간 365일 서고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조금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열하나님이 서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졌습니다. 신기한 건 열하나님은 오래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관리하는 것도 즐겁데요. 저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관리하는 건 싫거든요. 특히 책벌레들은 감당이 안 돼요. ㅠㅠ 그런데 열하나님은 오래된 책을 관리할 때 나는 특유의 냄새도 좋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며 먼지를 털어내는 것도 즐겁데요. 열하나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책들이 전해지는 거겠죠.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열하나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 졌습니다.


열하나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었더니 7이라고 대답하셨어요. 행운을 준다고 해서 좋아한데요. 숫자에 큰 관심이 없는 분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 수 있죠. 좋아하는 색을 물었더니 파란색이 좋데요. 청바지의 파란색이라고 콕 집어 줍니다. 깨끗하고 예쁘다고. 특히 하늘, 바다가 연상이 된데요. "오늘 바다를 입고 오셨네요?"라고 물었더니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자신의 청바지를 보더니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져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처음 뵙는 분인데. 이상하죠? 뭔가 제 과거와 오버랩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더니 순댓국이랑 버거킹의 와퍼를 좋아한데요. 하. 이런 버거킹 와퍼를 좋아한다니. 이런 분을 만나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대부분 햄버거를 좋아한다고 하지, 버거킹의 와퍼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거든요. 순간 빛바랜 일기장을 본 것처럼 제 20대를 조우한 느낌이었어요.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열하나님과 제가 영혼의 무게가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알아요. 처음 보는 분에게 영혼의 무게가 같다는 둥 과거와 조우한 느낌이라는 둥 하는 소리가 얼마나 사이비로 들릴지. ㅠ 하지만 제 브런치 "추억의 맛"에 '버거킹 햄버거를 좋아해'를 참고하시면 제가 버거킹 와퍼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해할 거예요.

좋아하는 동물은 고양이인데, 너무 귀엽데요. 털은 부슬부슬한데 새침한 표정이 매력적이라고. 좋아하는 식물은 없데요.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데요. 올레길을 걷고 싶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하니 지금은 여유가 없데요. 일에 매여 있다고. 일에 찌든 직장인이라고. 하. 저도 그랬어요. 그땐 그때가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이상하게 과거를 소환시키는 분이 계십니다. 열하나님이 그랬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일에 매여 있어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 한 삶. 마치 저의 20대를 보는 듯 애잔한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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