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영상 30도. 장마철.
"짧은 글을 쓰는 것에 재미가 들리면 안 되는 거야."
지난번 선생님의 말씀이다.
계단을 내려오며 짙은 수목을 보았다. 물먹은 머리채마냥 서로 얽혀 선 수목. 저것들이 무엇을 가리려는가 머리를 맞대고 겹겹이 모여들며 서 있다. 가만가만 보니 욱은 수목이 미처 가리지 못한 어딘가, 꼭 이 빠진 것만치 트여 있다. 고 까만 골. 새까만 어둠. 그 안에 무엇이 있나. 그 틈에서 무엇이 벌어지는가 자세히 들여다본다. 우림羽林. 나는 우림에 살았다. 우림의 밤을 맞은 사람은 안다. 저 시커먼 속은 영영 알 수가 없다. 결코 모른다. 새까만 골을 바라보면 고 안의 것이 나를 본다. 나를 안다. 그러니 기이함으로부터 서둘러 고개를 돌려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림과 같은 수목에 취하여 집요한 범과 같은 눈으로 까만 골을 들여다본다. 실낱과 같이 눈을 뜨고 가만가만 들여다본다.
그것은 나만 볼 수 있는 소설小舌, 그 때문이다.
저것들이 무엇을 가리려 저리도 머리를 맞대고 있는가. 아득하니 골몰하다 우는 새에 정신이 깨어 뒤로 물러선다. 기실은 잔뜩 물먹은 수목 풍광에 내 발이 얽힌 것. 나는 뒤로 물러서 온 풍광을 바라본다. 새까만 골은 거대한 한 폭, 그 안의 어느 점.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새의 소리. 결국은 모두가 합일合一이다.
다시 길을 걷는다. 이제 더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뜀박질도 보이지 않는다. 종이부시
終而復始. '네 속에 있는 것이 다 나와야 진짜 이야기가 나오는 거라.'
"짧은 글은 재미가 있지, 아주 재미가 있어. 그래도 소설小說을 써야지 않겠냐. 알겠느냐?"
지난번 선생님의 말씀이다.
오늘의 추천 앨범은 Ernestine Stoop가 연주한 Tapdanc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