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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콩대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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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Jul 12. 2024

Hoop

22. 영상 29도. What's the beef?

  무료한 도로다. 삼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그런 것일까. 삼나무가 한없이 앞뒤로 늘어선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기분이 영 이상하다. 



  초행길이기도 했으나 마음이 도무지 급한 탓에 서둘러 차선 변경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말로 못할 정체에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그러나 곧 우회전을 해야 한다 하니 지금 와서 방향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차선만 꼼짝을 않는다. 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막힌 것도 아니다. 텀을 두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앞으로 가고 있다. 그러다 간혹 저 앞에서 누군가 다른 차선으로 빠져나가면 그만큼 또 전진한다. 몇몇 운전자의 얼굴이 차창 밖으로 쑥 나왔다가 들어가고 또 쑥 나왔다가 들어간다. 나는 차를 버려두고 가는 상상을 했다. 도무지 방법이 없다. 몸 여기저기로 몰려드는 짜증에 근질근질하기만 할 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까. 이 상태라면 알 수가 없다. 일행 중 몇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쁜 걸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시간을 보니 다들 도착할 시간이다. 아마 하나둘 막 도착해서 방을 둘러보고 짐을 푸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몇 번 더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결국 김에게 이러이러한 일로 늦는다고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같이 출발할 것을 그랬다. 몇몇 운전자의 얼굴이 차창 밖으로 쑥 나왔다가 쑥 들어간다. 일행들 속에 섞여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별로 기쁘거나 들뜨지 않은 얼굴이다. 그러나 이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다른 길은 없는 걸까. 내비게이션 화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이것저것 검색해 봐도 초행인 데다가 콘도 또한 깊은 산중에 있다 하니 봐도 알 턱이 없다. 뒤편의 누군가가 연신 클랙슨을 누른다. 클랙슨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린다. 그 소리에 이어 몇몇 차에서도 클랙슨을 울린다. 마치 성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것마냥 그 날 선 소리가 내 신경을 건드리다 못해 옥죄기까지 한다. 머리가 지끈지끈 울린다. 나는 차창에 기대어 관자놀이를 짓누르다 말고 주먹으로 클랙슨을 내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별 수 있나. 갈 길은 이 길뿐이다. 그리고 그나마 가고 있다. 앞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갑갑하다. 초조하다 못해 차가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조차 무료하기 짝이 없다.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그때 저 앞의 또 한 대의 차가 옆 차선으로 빠져나갔다. 그것을 본 성난 사람들이 클랙슨을 눌러 댄다. 간다, 가고 있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차 한 대가 슬금슬금 바퀴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차선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지독한 정체가 이어진다. 성난 사람들의 요란한 클랙슨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 소리 때문이었을까, 이 상황 때문이었을까. 더는 참을 수 없던 나는 클랙슨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쳤다. 폭죽이 터지듯 길고도 요란한 소리가 도로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달리 개운하지도 않았다. 내 소리는 곧 다른 소리에 묻혔다. 왜 차를 타고 나왔을까. 나는 결국, 옆 차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갈 방법이 있을 것이다. 길을 결국 못 찾는다면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내가 차선을 빠져나오자 다들 내 차만큼 또 전진한다. 나는 멈춰 선 차들을 조롱하듯 도로를 달렸다. 멈춰 선 도로 위 차마다 성난 사람들의 얼굴이, 한없이 무료한 얼굴들이 운전석에, 뒷좌석에 눌어붙어 있다. 앞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체의 시발점에는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우회전 차로에 조금 못 닿은 곳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상태로 여기까지 온 걸까. 차는 안전 펜스에 바싹 붙여 세워져 있었다. 차의 좌측 타이어 두 개는 푹 꺼져 있었다. 운전자는 몹시 난감한 얼굴을 한 채 전화를 붙들고 삼각대 주변을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두 명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이 쑥 올라왔다 내려가고 또 쑥 올라왔다 내려갔다. 다른 차들은 옆 차선을 살피며 그 차를 피해 천천히 우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한 것은 우회전을 해서 들어간 도로 또한 얼마 못 가 막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길을 잃었다는 생각에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산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나. 골치가 아프다. 이번 만큼은 꼭 참석하겠다고 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왜 이번에는 간다고 했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 대답했을까. 그동안의 거절 때문에, 아니면 김의 부탁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산중이라는 것 때문에 그랬을까. 그것을 생각하니 머릿골이 울린다. 이제 와서 그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못 가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돌아가면 된다. 사정은 후에 말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한참을 달리다가 산이 있는 지명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을 했다. 

  우회전을 하자 이상할 정도로 한적한 도로가 나왔다. 묘한 기시감마저 들 정도였다. 어쩐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마도 너무 꽉 막힌 곳에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한적함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길을 따라가도 되는 걸까.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사이 영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비게이션이 곧 길을 찾아냈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길은 꽤나 멀었다.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이 다소 느긋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그렇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이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이어 도로 양쪽으로 울창한 삼나무숲이 펼쳐졌다. 장관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삼나무 뒤로 수목이 짙푸르게 얽혀 있었다. 나는 양쪽 창문을 열었다. 흙 내음일까, 깊은 숲 내음일까. 짙은 내음이 차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빠져나간다. 박새 소리가 들려온다. 선선한 공기가 차 안에 가득 찬다. 곧 일행들을 만나 정신없이 떠들어 댈 내 모습을 상상하니 다소 들뜨기까지 했다. 만나면 무어라 이야기할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보다는 완벽해졌다는 말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이대로라면 저녁 식사 때 즈음 도착할 것이다. 나는 라디오 소리도 끈 채 한가로이 도로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삼나무가 한없이 늘어서 있어서 그런 것일까. 무료하다. 끝없이 앞뒤로 늘어선 삼나무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영 이상하다.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뒤로 가고 있는 것일까, 혹은 멈춰 선 것일까. 묘한 착각이 든다.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차 한두 대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혼자가 되어 하염없이 달리고 있다. 대체 얼마나 온 것일까. 내비게이션을 보니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나는 이 길의 절반 정도를 지난 상태였다. 그러나 풍경이 변함없어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박새 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까마귀도 성난 울음을 내지른다. 길이 지나치게 무료하다 보니 예민해진 모양이다. 혹은 초조한 것일까. 나는 결국 갓길에 차를 세웠다. 돌아가야 하나. 어쩐지 날도 어둑해지는 것 같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차문을 열고 앉아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일행으로부터 부재중 전화 두 통과 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메시지는 김이 보낸 것이었다. 김은 내게 천천히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친김에 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는다. 아마도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나는 결국 다시 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모양이야. 어쩌면 밤늦게 도착할지도 모르겠어.'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정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날은 어느새 어스름해지고 있었다. 이러다 금세 어둑해질 것이다. 나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Hoop는 제가 이전에 쓴 '견인'이라는 아주 짧은 소설의 서두 몇 줄로부터 출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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