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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Mar 11. 2019

아이의 슬픔을 바라보는 슬픔

‘봄’, ‘새 학기’로 대변되는 3월은 변화가 많은 달이다. 나는 두 해 전부터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올해 본격화되면서 차츰 바빠지고 있다. 바빠서 힘들지는 않고 일이 진행되는 게 보이니 즐겁다.


아내는 근무지를 옮긴지 이제 한 달이 되어간다. 다행히주거지를 옮기지는 않았지만, 출∙퇴근 거리와 시간이 약 1.5배씩 길어졌다. 즉, 새벽 같이 나가서 밤 늦게 귀가한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무척 힘들 것이다.


총총이는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만 2세반’으로 올라갔다. 만 1세반 5명의 선생님 중 2명이 함께 올라갔고, 10명이 넘는 같은 반 친구들도 변하지 않았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는 교실의 위치만 바뀐 사소한 변화이다.


그래서 총총이가 힘들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만 1세반’에서 ‘만 2세반’으로, 교실의 위치만 바뀌는 이 사소한 변화가 미칠 영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과소평가했다. 동시에, 아이의 적응력을 과대평가했다.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총총이가 놀이 중에 같은 반 친구의 손을 거의 물 뻔 했다는 것이다. 손이 물릴 뻔한 친구와 그 장면을 목격한 선생님도 놀랐겠지만, 선생님으로부터 그 내용을 전해들은 나와 아내도 무척 놀랐다. 어린이집에 처음 적응할 때 보였던 행동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은 낮잠을 자면서 이불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는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역시 아주 예전에 그랬던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이다. 아이의 심리 발달 과정에 관한 전문 지식이 있지는 않지만, 일종의 ‘퇴행’ 징후 같았다.


등원이 힘들어졌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웃으며 교실로 달려가던 총총이였는데, 그래서 총총이를 등원시키고 서둘러 출근하는 내 마음이 분주하기는 해도 무겁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수월하던 일이 갑자기 다시 어려워졌다.


‘원인이 뭘까….’


작은 변화이긴 하지만, 새 학기, 낯선 환경이 주는 영향이 큰 것 같았다. 두 명의 선생님을 새로 만났지만, 지난 1년 간 함께 지냈던 세 명의 선생님과는 헤어졌다. 그 중에는 총총이 주임 교사로서 많은 애정과 관심으로 총총이를 돌봐주던 선생님도 계셨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여쭤보니 총총이처럼 새 학기가 주는 낯섦과 어수선함에 영향을 받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제각기 드러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총총이는 부쩍 엄마를 찾는다고 했다. 엄마가 지금 여기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씩 “엄마!”, “엄마!”하고 외친다고 했다. 낮잠을 자기 전에도 “엄마…”하며 울먹이다가 잠이 든다고 했다. 아내의 근무지가 바뀌면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 영향도 있는 듯 했다.


지난 휴일, 나는 온종일 총총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총총이가 어린이집에서 보였다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주 엄마를 찾았고 엄마를 이야기 할 때면 꼭 눈물을 보였다. 엉엉 울지는 않고 가늘게 흐느꼈다.


총총이의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그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누가보아도 슬픔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일종의 상실에서 오는 아주 순수한 형태의 슬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을 쓴 신형철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문학을 하는 사람이에요. 슬픔을 몰라서는 안 되는 사람이고 또 모르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되게 비참한 체험이었어요. 아내가 어떤 슬픔을 느끼는데 제가 모르는 게 괴로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진짜인 말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의 슬픔을 알아야 해요.


돌이켜보니, 사랑하는 이의 슬픔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본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아이의 슬픔을 마주하여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껏 타인의 슬픔을 어떻게 바라보았던가. 그리고 그 슬픔에 어떻게 대응했던가.


나는 아이의 슬픔을 모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프시고 난 뒤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홀로 어머니를 떠올리며 흘렸던 나의 눈물이 총총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총총이를 어떻게 위로할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감정에 좋고 나쁨은 없다는 것. 슬픔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하나라는 것. 슬플 때는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다는 것. 그러나 그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해가 되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것. 아이의 슬픔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이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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