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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총총파파 May 20. 2020

오늘 처음 엄마아빠 소리를 냈다

물론 어서 맘마를 달라는 의사를 표현하는 소리였다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아내와 연애를 할 때도 그랬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의 모든 처음을 꼭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집착 돋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 분명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초두효과. 모든 처음은 강렬하다. 오래 남는다. 영향이 크다. 아빠로서 아이가 처음 무언가를 하는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이제 생후 6개월이 된 둘째 아들 뽐뽐이는 안방에서 아빠인 나와 같이 잔다. 물론 뽐뽐이는 아기 침대에서 혼자 잔다. 수면 습관이 벌써 어느 정도 잡혔기 때문에 밤 9시 전후로 잠들고 아침 일찍 일어난다. 내가 출근을 일찍 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는 뽐뽐이 얼굴을 보고 회사에 갈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나도 출근이 평소보다 조금 늦었고, 뽐뽐이도 일찍 일어났다.


아기 침대 쪽에서 으마! 아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어우어우어 뭉그러진 옹알이 속에서 너무나 또렷한 발음이라 잘못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지라 깜짝 놀랐다. 어, 엄마랑 아빠를 부르고 있네. 실은 엄마와 아빠를 불렀다기보다는 이제 배가 고프니 어서 맘마를 달라는 표현이긴 했다.


옆방에서 첫째 아들 총총이와 함께 자고 있던 아내도 잠결에 그 소리를 선명하게 들었다고 한다.


폴 그레이엄은 아이를 갖는 일(Having Kids)이란 글에서, 아이를 기르며 겪는 어려움에 비하여 아이와 함께 하는 마법 같이 행복한 순간은 자주 이야기 되지 않는다고 썼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를 기르며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으로 써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지. 아이와 함께 하며 만나게 되는 엄청나게 행복한 순간들이 거의 항상 매일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순간을 부지런히 기록해두고 싶다.


어느 주말 아침. 총총이와 뽐뽐이.


요즘 나는 아침마다 뽐뽐이 얼굴 보는 낙에 산다. 매일 아침 뽐뽐이가 나에게 보여주는 건 그냥 웃음이 아니다. 긴 저녁을 지나고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뽐뽐이가 아기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내 얼굴을 확인하면 엄청나게 밝고 화사한 웃음을 지어준다. 꺄륵, 하며 팔과 다리를 바둥거리기까지 한다.


폴 그레이엄은 위 글에서 아이를 재울 때 거의 매일 세상 평화로운 순간을 맞이한다고 썼지만, 나는 아침에 뽐뽐이가 잠에서 깨서 나의 얼굴을 보고 세상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때, 정말 엄청난 행복감을 느낀다.


어느 누가 나에게 그런 웃는 얼굴을 아침마다 보여준단 말인가. 살며시 짓는 미소가 아니라 있는 힘껏 환하게 반기는 웃음. 보는 사람마저 기쁨에 가득차게 만드는 그런 웃음.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갓난아이일 때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주셨던 게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뽐뽐이의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나도 사랑하는 가족에게 있는 힘껏 웃어주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만큼은 그렇게 있는 힘껏 환히 웃는 얼굴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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