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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Apr 10. 2018

얼떨결에 알아버린 너의 성별

아빠가 쓰는 출산기 (9)

태아의 성별은 여전히 민감한 주제이다. 과거 남아 선호 풍조(?)가 만연하던 시절 — 대략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말까지 — 에는 여아 낙태가 정말 많았다. (슬프고 화나는 일이다.) 출생 성비 불균형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고자 의료인의 태아 성 감별 행위, 성별 고지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구 의료법 제19조의 2 [태아의 성감별행위등의 금지]
① 의료인은 태아의 성감별을 목적으로 임부를 진찰 또는 검사하여서는 아니 되며, 같은 목적을 위한 다른 사람의 행위를 도와주어서는 아니 된다.
② 의료인은 태아 또는 임부에 대한 진찰이나 검사를 통하여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임부 본인, 그 가족 기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본조신설 1987.11.28]


위 조항이 신설됨으로써 이제 원칙적으로는 임부를 진찰・검사하는 의료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원칙적으로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입장은 매우 난처했을 것이다. 산모와 그 가족들이 태아의 성별을 알려달라고 얼마나 요구했을까. 암암리에 알려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공개적으로는 하지 못하게 되었다.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태아 성 감별 행위는 현재까지도 금지되고 있지만, 성별 고지 행위 규정에 대하여는 개정이 있었다. 태아가 출산할 때까지 임부 및 그 가족이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심각한 기본권 침해라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제는 임신 32주가 지나서는 태아의 성별을 합법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현행 의료법 제20조(태아 성 감별 행위 등 금지)
① 의료인은 태아 성 감별을 목적으로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여서는 아니 되며, 같은 목적을 위한 다른 사람의 행위를 도와서도 아니 된다.
②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性)을 임부, 임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09.12.31.> [2009.12.31. 법률 제9906호에 의하여 2008.7.31.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된 이 조 제2항을 개정함.]


요즘은 위 조항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 바야흐로 여아 선호의 시대이다. 출생 성비는 2007년부터 정상 성비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게 된다고 하여 곧장 낙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매우 드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아직 위 조항은 살아있다.


민감한 주제이다보니 서론이 길었다.


아내와 나는 총총이의 성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더 정확히는 딸이든 아들이든 별 상관이 없었다. 딸은 딸이라서 좋고, 아들은 아들이라서 좋으니 건강하게 만나기를 바랐다. 여느 예비부부와 마찬가지의 마음이었다.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가 생각보다 일렀다.


임신 12~13주, 산부인과를 방문하여 입체 초음파 검사라는 것을 하였다.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시기에 찍는 초음파 사진을 놓고 예비 부모들이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고 척추와 다리의 각도도 재보고 한단다. 왜? 태아의 성별을 너무 궁금해서! 


총총이는 입체 초음파 검사에서 얼굴과 몸의 형상이 꽤 선명하게 드러났고, 성별을 알 수 있는 부분 역시, 꽤 선명하게, ‘확인’되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들이구나.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렇게나 빨리? 아내는 놀라는 기색이 별로 없었다. “어쩐지 아들일 것만 같았어.” 그랬구나.


“오빠. 아들이라서 좋지?” 아내가 물었다. 솔직히 좋았다. 아무래도 남자인 나는 ‘남아’가 편할 것 같았다. 같은 남자로서 이해할 수 있는 구석도 많으리라. 아버지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자리에 나를, 나의 자리에 총총이를 대입해보았다. 기분이 요상했다.


양가 부모님께서도 몹시 좋아하셨다. 태몽 이야기를 또 하셨다. 역시 아들 낳는 태몽이었다고... 아, 태몽이 스포일러였구나!



아빠의 생각

산부인과에서 받은 초음파 사진이 갈수록 많아지고 쌓이게 된다. 초장부터 정리를 잘해두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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