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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남 Dec 19. 2022

아내가아프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퇴근 후 평강을 누리는, 저녁시간. 퇴근한 아내가 집에 들어오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오빠, 나 엉덩이에 뭐 났어." 처음에 나는 아내의 엉덩이에 종기가 난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심각했는지 내 손을 그 '뽈록한 무언가'에 가져다 놓았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곳에 있지 않았다. 좀 더 깊숙한, "여기에 이게 왜 있지?"란 말이 나올법한 곳에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있었다. 그래도 난 이상한 종기라 진단? 하고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다.


다음날, 진짜 의사의 진단으로 그 녀석의 정체는 밝혀졌다. 그것은 종기가 아니라 '치루'였다. 그리고 아내는 담담하게 "수술해야 한 데서 수술 날짜도 받아왔어."라고 말했다. 내가 만져봤기에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진료를 받으러 간 날 남편에게 톡 한번 없이 바로 수술 일정을 잡고 오다니.... 어쩜, 이리도 독립심이 강한 아내란 말인가? 다만 조금 의문이었던 것은 수술일이 한 달 후였다는 것. 수술을 하려면 바로 하는 게 좋지 않냐고 내가 아내에게 다시 물으니 아내는 대학 동기들이 하는 연주회가 있는데 그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수술을 받겠다고 말했다.(아내도 그 연주회의 연주자라 연습 중이었다.) 염증을 몸속에 오래 갖고 있어 봐야 좋지 않을 것이라 내심 마음은 불편했지만 현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니 어떡하겠는가? 항생제를 먹어가며 출근해서 일하랴, 퇴근하고는 연주회 연습하랴 자신이 맡은 것에 집중하는 아내를 보며 응원할 수밖에...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주회가 무사히 마쳤다. 그다음 주 목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한 아내는 우리 집이 아닌, 병원으로 퇴근을 했다. 그리고 홀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을 때 내가 함께 가지 못 한 이유는 회사의 두 부장님들이 이제 다른 사업부로 이동하셔서 부장님들과 마지막 식사자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식사만 하고 조금 늦게라도 병문안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아내는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오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말했다. 계속되는 실랑이가 마무리되지 않자 나는 "지금 당장은 오빠가 병문안 안 가는 것이 괜찮겠지만, 나중에는 괜찮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일평생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있으니 잘 생각해봐."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오빠가 오지 않으면, 나 서운해할까?


라고 내게 묻자, 나는 지체 없이 "응."이라고 대답했다.(이 얼마나 제치 있는 남편의 대답이란 말인가?) 이내 내가 늦게라도 병문안을 가겠다는 의견에 동의를 해주었다. 





무르익은 송별회를 뒤로하고 아내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서둘러갔다. 문제는 식사만 하고 나오려 했던 계획이, 막상 그 자리에 있다 보니 너무 지체되어버린 것이다. 면회시간이 10시까지였는데, 9시는 되어야 병원에 도착할 것 같았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하니 이제 9시인데 주차 관리원이 주차장 문을 닫으려 했다. 10시까지 면회인데 이게 무슨 일인가 했지만, 거기서 옳고 그름을 따질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었을뿐더러 아내의 병문안이 우선이라 금방 올 테니 기다려 달라 하고 아내의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는 날 보자마자 해맑게 웃는 아내의 모습에 수술이 잘 된 것 같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지만, 뒤이어 드는 생각이 혹여 남편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아내의 배려인가 싶어 거듭해서 "괜찮아?", "아프진 않아?"라고 물어보았다. 주차 관리원이 기다리고 있어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한 후 약 45분간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를 한 후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홀로 누운 이부자리는 왜 그렇게 허전하던지...(겨우 2일 간 혼자 잤다.) 아내는 2박 3일을 병실에서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하고 3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해서 수술부위가 덧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이런 걱정이 내게 병을 주었는지 나는, 아내가 돌아온 날, 감기 기운에 몸져누웠다. (다행히 12시간 자고 나니 말끔히 나았다.) 





어릴 적에 아플 땐 부모님이 보호자로서 있었지만, 이제는 나의 보호자는 내 아내요, 아내의 보호자는 나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이번 경험으로 하나 깨달은 것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당연한 소리나 하는 건가 싶겠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면 건강한 가족에게도 그 영향이 오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 특유의 운명 공동체라는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기 때문이리라. 아픔, 질병이 오는 것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적어도 깨끗한 환경, 청결, 적당한 운동 등 자기 관리를 통해 10번 아플 것을 1,2번 아프게 만들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큰 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우들을 보게 되면 일상생활에 불편함 없이 건강한 것 만으로 참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중요한 감사거리를 금방 망각해버린다. 이 세상의 남편들이여, 아내들이여 아프지 맙시다. 






PS.



아내는 지금 건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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