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부업 계정을 차단하고 dm을 정리하다가
장문의 메세지에 멈췄다.
"며칠전 언니의 글귀를 보다가 어릴적 기억 속에
언니의 아빠가 생각나 이렇게 글 남겨요."
쿵.
마음 깊이 무언가 내려앉았다.
타인이 말하는 나의 아빠 이야기.
못견디게 궁금했다.
내가 미화시키고 그랬다 믿고 있는 아빠가 아닌
객관적인 제 3자의 시선과 기억이라니.
솔깃했다.
"어릴 적 언니네 집에 놀러가면 항상 녹차를 우려서 다도를 가르쳐 주셨고,
저녁 식사에 초대하셔서 손수 더덕구이를 만들어주셨던 게 기억나요.
항상 유쾌하셨고 지혜로우셨고 다정하셨고 농담도 많이 하셨던 분이셨어요."
잊고 있었던,
수차례 이사를 하며 닳고 닳아 조금씩 금이 가고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다도 세트.
신혼집에 챙겨갔다가
또 몇 차례 이사 끝에 내보내졌던.
아빠의 손길이 가득 담긴 찻잔이 문득 그리워졌다.
"예슬이는 노력을 많이 하는 아이다.
그래서 기특하다."라는 말씀도 들려주셨다고.
아빠는 늘 나를 대견한 딸이라 아끼셨다.
어딜 가든 딸 자랑이 마르지 않는 분이셨다.
"수많은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나 홀로 버려져 있다는 느낌이다.
인간은 세계 전체가 등을 돌려도
속마음을 나누고 나를 믿어주는
단 한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랑이면 살아지는 것이다.
Among the many kinds of pain,
the greatest pain is feeling
that I am abandoned.
Even if the whole world turns its back,
so long as there's one person
there beside me
sharing innermost feeling and trusting me,
so long as that love is there, I'm alive."
/ <걷는 독서>, 박노해 중에서
나에게 단 한 사람은 단연코 아빠였다.
고등학교 3학년 전교 학생 회장에 나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계속 성적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반대 뒤에
조용히 아빠 친구 사진관 예약을 해주시고
따로 용돈을 챙겨주셨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한다.
아직도 유효한 평생 안고 갈 큰 사랑.
나는 감히
아들들에게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지만
내일은 조금 더 나아졌으면...
(To. ES 덕분에 아빠를 마음놓고 그리워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