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와 소련 (1)

Intro

by 서초패왕

러시아는 언젠가 한번은 방문해야 할 국가였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해 모스크바까지, 뒤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여행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요동케 한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 이후 지금까지, 그런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 이런 장기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러시아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6월의 멕시코 여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쿠바·페루 등과 더불어 중남미를 일주하는 시간적 여유는 직장생활을 하는 한, 앞으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지금이 멕시코를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라고 생각했고 실천에 옮겼다.


학부에서 소련사 수업을 들은 지 15년 만이다. 나는 헬무트 알트리히터의 <소련소사> 한 권을 조심스럽게 여행 가방에 담았다.


<소련소사>는 서문에서, 소련이 공중 분해된 지금, ‘왜 소련인가’를 물으며 논의를 시작한다. 책은 ‘소련이 왜 망하였나?’에 초첨을 맞추지 않는다. ‘어떻게 소련이 70년이나 성공적으로 존속했나?’ 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1917년,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농업국가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르크스 경제관에서 이야기하는 공산주의의 선결 조건인 자본주의조차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게다가 독일과 한창 전쟁 중이었던 제정 러시아에서,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은 성공했다.


신생 소련은 어디에도 인정받지 못하였고, 사방에는 적이 가득했다. 독일과의 강화 조건은 점점 가혹해졌고, 백군을 비롯한 보수파·왕당파 세력과의 내전이 예상되어 있었다. 최악의 상태에서 국가 운영을 시작한 소련 공산당은, 위기를 넘겼고 스탈린 집권기의 급속한 공업화와 신경제정책(NEP)를 거치며 부강해졌다.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 대열에 합류하였으며, 이후 5대양 6대주에 영향을 미치는 최강국으로 성장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공산주의의 경제 원칙은 분명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는 이상일 뿐, 현실에서의 원활한 운용은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은 계획경제제도를 70년간 운용하면서도, 최강대국의 한 축의 군사·기술력을 보유했고, 세계 2-3위의 경제규모를 유지해왔다.


소련 공산당은 이후 1인 독재·부패와 정체된 경제 등 으로 인해 퇴색되고 변질되었지만, 레닌과 트로츠키의 혁명 자체는 순수한 것이었다. 2월 혁명·10월 혁명과정에서 레닌과 트로츠키가 가진 이상의 순수성은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에 기록된 그들의 연설과 논쟁에서 잘 나타나 있다.


세계 최초로 공산 혁명이 성공한 나라이며, 세계 최강대국의 일원으로 냉전의 일익을 담당했던, 그러면서 삽시간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소련은 학부 시절부터 나에게 가장 큰 흥미를 주는 국가였고, 그 후계국인 러시아는 소련사 수업을 수강했던 그 때부터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방문을 결정한 시기는 계속해서 늦춰졌다. 현재 러시아 정부는 나토 가입을 빌미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러시아 방문을 계속해서 늦출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소련의 가장 중요한 구성국 중 한 곳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이 러시아로서는 큰 충격이며 안보적 우려 상황일 것임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은 분명 국제사회가 용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러시아 여행을 앞두고, 안전에 대한 우려보다는, 러시아 대외 정책에 대한 지지나 우호로 해석될까봐 저어되었다. 하지만 분명 러시아 방문은 소련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과 근대 러시아 문화에 대한 애정에 기인한 것으로, 불필요한 오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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