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와 소련(5)

소련을 찾아서

by 서초패왕

비행기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와 소련의 흔적을 찾아 동행하는 날이다. 중국동방항공 북경發 모스크바行 항공기 옆자리에 앉은 러시아인 NactR가 동행을 함께할 친구이다. 결항으로 인해 부득의하게 북경을 거쳐 가게 되었지만, 뜻하지 않은 여정이 전화위복이 되어 소련 탐구의 동지를 만난 셈이다.


NactR는 모스크바의 명문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해 무역회사를 다니는 재원으로, 여름에는 주로 가족과 해외여행을 하고, 겨울에는 매년 도이칠란트 남부에서 스키를 탄다고 한다. 영어도 수준급이었다. 긴 비행시간을 활용해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소련과 러시아 역사를 포함해, 전쟁 상황에 대한 내용까지, 러시아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녀는 경제학도 출신답게 소련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특히 독일과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혁명이 많은 영토 상실로 귀결되었다며 비판했다. 그에 대해 나는, 소련이 지금의 러시아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전했고, 독일에 빼앗긴 영토는 2차 세계대전이후 갑절이 되어 돌려받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였다.


내가 레닌 묘소를 방문한다하니, 그녀는 그런 기괴한'Creepy'한 곳은 왜 가냐면서 농담이냐고 묻기도 하였다. 소련에 부정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소련과 러시아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동양인이 반가웠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인 소련 박람회장에 데려다 주겠다며 하루 시간을 내달라며 제안한다. 아마, 그녀가 한국의 보이그룹인 방탄소년단의 팬(Army)이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10시 소련 박람회장인 베덴바하에서 만나기 전, 오늘도 다섯 시에 기상한 나는 도심 서쪽에 위치한 빅토르초이 추모벽과 외무성 등 스탈린 양식 건물들을 보러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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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초이는 고려계로 소련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록그룹 KINO의 리더이다. 그룹의 대표곡 <혈액형>은 지금 들어도 그 세련됨이 놀랍다.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소련시기 록그룹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레토>가 2018년 개봉하기도 하였다. 28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그를 여전히 많은 러시아인이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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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성은 빅토르초이 추모벽과 가까이 위치하는데, 몰로토프, 그로믜꼬 등 전세계를 상대로한 소련 외교 사령탑의 본거지가 바로 이 곳이다. 외무성은 50년대 지어진 7개의 거대 스탈린 양식 건물 중 하나로, 이들 건물은 <Stalin Sisters>라고 불린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물 2개가 외무성과 엠게우(모스크바 국립대학 본관)이다. 15년 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만난 인민문화궁전 역시, 소련이 우호의 증표로 지어준, 스탈린 양식 건물이다. 거대 건축물에서 '세계의 1/6'를 표방한 소련의 기상이 그대로 전달된다.


10시에 모스크바 북부의 베덴바하('인민 경제의 업적'이라는 뜻)에서 NactR와 다시 만났다. 박람회장은 소련 16개 구성국의 특산물과 공업제품을 전시하기 위해 마련된 곳으로, 16개 구성국의 통합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16개 건물은 각 구성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고, 현재도 몇몇 건물은 그 국가의 관리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관의 상태가 궁금했는데, 역시나 완전한 폐쇄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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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덴바하 인근에는 소련 조각가 베라 무히나가 1936년 파리 만국박람회 소련관 전시를 위해 제작한 ‘노동자와 꼴호즈 여성농민’ 상이 있는데, 이 동상은 강철로 만들어졌으며 무게는 75톤에 이른다. 소련의 국장과 함께, 소련을 상징하는 심볼과도 같은 유명한 조형물이다. 이 동상으로 베라 무히나는 스탈린상을 수상하였다.


박람회장을 구경하며 우리는 러시아 정치와 역사에 대해 다시 논의를 이어갔다. 그녀는 레닌보다는 스탈린에 우호적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그의 리더십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현재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러시아 정부에 대한 평가로도 이어졌는데, 전쟁이 국민을 통합시키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박람회장을 둘러보고, 보르쉬와 힌칼리 등 러시아 전통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이즈마일로보로 이동하였다. 러시아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까지 보고나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녀와 헤어지며 바쁜 시간을 내어 동행해 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국에 방문하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보은차 하루는 꼭 시간을 내어 서울의 가이드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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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알찬 모스크바 여행을 이것으로 마치고, 미리 예약해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레닌그라드스키 역으로 향한다. 야간열차 침대에서 자는 것은 종범이와 동유럽 여행 이후 近15년 만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루마니아 브라쇼브까지 12시간을 1등석으로 이동하며 어찌나 신이 났었는지. 그때의 여행의 즐거움은 잊히질 않는다. 기차는 어두컴컴한 러시아의 침엽수림을 뚫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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