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자고 일어나 아침이 되니, 기차는 나를 어느덧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내려주었다. 레닌 사후 70여 년 동안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도시가 바로 이 곳이다.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 발생한 ‘혁명의 도시’ 라고는 하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레닌의 도시라기보다 여전히 표트르 대제의 도시였다.
모스크바가 가장 러시아스러운 도시였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파리·런던 등 여느 유럽도시 못지 않은 서구성을 강하게 풍기는 도시였다. 아니, 오히려 인위적일 정도로 유럽적이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아마도, 표트르 대제가 독일·스웨덴 등 서유럽의 근대화를 표방하며 적극적으로 유럽화한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표트르 대제가 17세기 서구화, 근대화를 목표로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전한 이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 이전까지 3세기 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기차에서 제대로 샤워하지 못해 몸이 답답하고, 옷도 갈아입고 싶다. 하지만 아직 호텔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았다. 은행에서 추가로 환전을 하고, 호텔 주변을 한가롭게 산책했다.
확실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착하니 기온이 뚝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위도는 북위 60도에 육박한다. 이는 북구라파 세 국가의 수도, 오슬로·스톡홀름·헬싱키와 비슷한 수준이고,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보다는 4도 정도 낮다. 늦여름~초가을 날씨의 모스크바에서는 한여름 반팔 복장도 가능했는데, 이곳에서는 긴팔을 두세 겹 껴입어야할 것 같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샤워하고 낮잠을 한숨 잤더니 어느새, 발레 공연시간이 코앞이다. 근처에 <송학>이라는 한국식당이 있다하여, 저녁으로 된장찌개를 먹고 마린스키 극장으로 이동하였다. 많은 이가 추천한 식당이었는데 해물 된장찌개는 영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재료 공수가 어려웠겠지만, 바지락 대신 홍합을, 꽃게 대신 오징어를 넣은 해물 된장찌개는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마린스키 극장은 1860년에 개장했으며, 세계 최고라는 마린스키 발레단이 이 극장 소속이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극장보다 앞서 1740년에 황실 직속 발레단으로 출범하였다. 극장과 발레단 모두 소련시절, 키로프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칭이 키로프 극장·발레단으로 변경되었다가 91년 소련 붕괴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마침 오늘의 공연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이다. 3대 발레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다. 일찌감치 웃돈을 주고 1등석을 예약해 두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백조의 군무는 오차가 전혀 없는 천의무봉의 경지였다. 백조 역할 단원 한명 한명의 실력도 대단한데, 군무로 합쳐지니 그 우아함은 가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발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나조차도, 한국에서 봤던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 공연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1막과 2막에서 '악의 상징' 로트바르트의 시퀀스를 과감히 축소했는데, 이는 백조의 군무를 강조하기 위한 해석의 일환으로 보이며,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린스키 발레단은 <백조의 호수>의 다양한 결말 중 오데트 공주가 마법에서 벗어난다는 ‘해피엔딩’을 선택하고 있다.
가격대가 높은 공연인 만큼, 부유해 보이는 러시아인들이 주요 관람객이었는데 이들 역시 옷차림만 화려했지, 공연매너는 역시나 끔찍했다. 앞에 앉은 러시아 여성은 끊임없이 핸드폰을 하며 공연 사진을 찍었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또한 젊은 러시아 남성을 이렇게 많이 본 것도 처음이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면서, 젊은 러시아 남성이 확연히 여성에 비해 적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곳에는 이상하게도 남녀 성비가 맞는 것이다.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을 볼 정도의 부유층 남성은 우-러 전쟁에 동원되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과거 러시아는 네오 나치 등 극우 폭력단의 판을 쳐 여행하기 위험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신체 건강하고 호전적인 그들은 아무래도 전투에 적격일테니, 대부분 전쟁터로 나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러시아 대도시의 거리는 밤낮 가릴 것 없이 안전하기 이를 데 없다. 전쟁의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