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궁전과 그루지야 키친
북경에서 하루를 잡아먹은 모스크바 일정과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정은 확실히 여유가 있다. 5시부터 일어나 준비할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일어나 느긋하게 호텔 조식을 먹고 여장을 챙겨 길을 나선다. 오늘의 행선지는 여름궁전이다.
배를 이용해서 하부정원으로 먼저 들어서는 방법과,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상부정원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아직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적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방문하기로 했다. 시내에서 교외로 나가는 길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1시간가량 꾸벅꾸벅 졸면서 이동하니, 여름궁전에 도착해 있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황실이 주로 기거했던 ‘겨울궁전’이라면, 이 곳은 여름 별궁에 해당한다. 베르사유 궁전에 영감을 받은 표트르 대제가 그를 본따 건축했다고 한다. 확실히 건물 외관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이나, 독일의 상수시 궁전과 비슷한 모습이다.
궁전 자체도 웅장했지만, 사자의 입을 찢는 삼손의 모습을 테마로 하는 삼손 분수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對스웨덴 전투에서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공원 깊숙이 들어가면, 40년대 독일군에 의해 폐허된 모습과 복구되는 과정 등이 상세히 사진으로 전시되어있다. 폐허가 된 여름궁전 분수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나치군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진 한 장으로도 레닌그라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고, 또 소련 입장에서 사무칠지 상상이 되었다.
여름궁전에 다녀와서는 NactR가 추천해준 그루지야(조지아)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그루지야식 키친이 매우 인기가 있다고 한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체질적으로 위장이 약한 편이라, 외국에 나가서 먹는 음식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멕시코에서는 그 정도가 심해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였고, 결국 장염에 걸려 한국으로 돌아온 경험이 선하다. 이번에는 그런 경우에 대비하고자, 한가득 육포와 고추장, 햇반 등을 가지고 러시아로 들어온 터였다.
하지만, 가져온 햇반이 무색할 정도로 그루지야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특히 가지와 석류씨를 곁들여 만든 전체 요리와, 특제 밀크 소스로 만든 치킨 스튜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샤슬릭 소스도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단백하고 달콤한 맛이다. 음료로 마신 그루지야식 레모네이드가 음식의 맛을 배가해주었다. 한국에 아직 제대로 된 그루지야식 요릿집이 없는데, 내가 들여와서 사업을 하고 싶은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