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페리얼 포슬린을 구입해 귀국하다.
외국을 다니며, 기념품은 최소화 하는 편이다. 유일하게 사는 기념품이 있다면,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정도.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상당히 많은 기념품을 구입했다. 친구들에게 나눠 줄 꿀과, 각별한 분들께 특별하게 전할 보드카 외에도 내 취향이 충실히 반영된 기념품 등을 다수 구매하였다.
이 외에 여비를 상당히 가져갔던 터라, 남는 루블화로 러시아 황실에 납품하던 도자기 회사 <임페리얼 포슬린社>의 찻잔을 구입했는데, 아마 해외여행 중 구입한 물건 중 최고가의 제품이 아닐까 싶다.
임페리얼 포슬린은 1740년대 러시아만의 독자적인 도자기를 제작하라는 예카테리나여제의 명으로 첫 제작을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20세기 초까지 임페리얼 포슬린社의 제품은 황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혁명이후 시장화 되었다. 하지만 주력 생산라인은 워낙 고가여서, 대부분의 러시아인의 급여로는 여전히 구매가 쉽지 않을 듯하다.
선물과 기념품을 구입하고도 비행시간까지 시간은 충분했다. 아직 시내 외각에 보지 못한 곳들이 남아있었다.
동쪽 외각에 위치한 스몰린 성당은 귀족의 교육기관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현재는 동방정교회 성당 및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의 국제관계학부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10월 혁명 당시에는 볼셰비키의 작전본부였으며, 10월 25일 소련 정권 수립 선언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외에 카잔 대성당,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 등도 마저 방문하고 나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결항으로 출발부터 애를 먹인 중국 동방항공사. 귀국편 역시 쉽지 않다. 지연의 지연을 거듭하더니 새벽 2시가 돼서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하였다. ‘출발 때처럼 상해에서 하루 자야겠군. 회사에는 연차를 하루 더 내야지, 동기하고 약속도 취소하고.’ 당연히 환승 편을 놓치리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운채 상해 공항에 도착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인천行 비행기도 지연이란다. 지연에 안도하긴 또 처음이다.
성인이 된 이래로 구미 각국에서, 멕시코에 러시아까지 세계 곳곳을 주유하였는데, 이제야 여행의 70%는 대기와 이동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미식을 즐기고, 멋진 풍광을 보고 느끼고 즐기고 경험하는 건 30%도 채 되지 않는다. 이 30%를 위해 우리는 70%의 시간을 기다리며 인내한다.
가끔 불가피한 사정으로 70%가 80%가 되기도 한다. 천재지변으로 비행기가 결항하기도 하며, 정치상황으로 인해 꼭 가고 싶던 궁전이나 박물관이 폐쇄되기도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올해 나는 20대 때부터 평생에 꼭 가고 싶었던 멕시코와 러시아를 모두 방문했다. 회사를 다니고, 경제력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가고 싶은 곳들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혁명가들의 초기 순수함을 아로새기며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한때 소련를 구성했던 공화국들의 전체 인구를 모두 합해도 91년 수준(2억 9000만 명)밖에 이르지 못한다. 35년간 전혀 증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즉, 소련 붕괴가 이들 국가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70년간의 계획경제가 자본주의로, 프롤레탈리아 일당독재가 다당제 민주주의로 바뀌었으니, 적응이 쉽지 않았을 테다.
그중 특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상황이 심각하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소련에서 개별 국가로 복귀할때 5,200만에 육박했던 인구가 전쟁 직전 3,70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현재 비공식적으로는 인구가 2700만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인구감소의 이유로는 1) 소련 붕괴로 인한 사회 혼란 2)영토 상실로 인한 러시아로의 인구 편입 3)전쟁으로 인한 사망 4)난민 이동 등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 또한 소련 붕괴 당시 1억 5000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가 2024년 현재 오히려 수백 만명 줄어든 상태이다. 향후 50년 내에 러시아 인구가 1억 2000만명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인구 상황 역시 좋지 않다.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있던, 소련 구성국들의 암담한 현실은 인구감소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혁명의 순수함으로 시작하였을지라도, 100년 후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혁명의 결과는 붕괴와 혼란, 그리고 전쟁이다. 잘 되었다 한들 중국에서 겪었던 통제국가 이상이 되었을까? 많은 생각을 뒤로 하며 현실로 복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