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칼로와 리베라의 벽화
실질적인 멕시코 여행의 첫날이다. 오늘은 전날 만난 최열음씨와 김강훈씨와 함께, 멕시코 시티 시내를 같이 도보투어 한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역시 소칼로였다. 소칼로(Zocalo)는 광장이라는 뜻으로, 스페인어권 도시 어디나 소칼로가 존재한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소칼로라고 하면, 의례적으로 멕시코시티의 소칼로를 연상한다.
소칼로는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거대한 국기가 게양되어 있고, 동쪽에는 대통령궁이, 북쪽에는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위치해있고, 서쪽으로는 대법원과 연방정부·시 사무소 등이 밀집해 있는 멕시코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일요일의 소칼로는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주말을 맞아 거리로 나온 주민들과, 멕시코를 찾아온 관광객들만으로도 혼잡스러웠을 텐데, 거기다 오늘은 신화적인 아즈텍 복식을 갖춘 일군의 원주민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고, 또 한무리의 시위대가 연방정부에 대한 규탄대회를 벌이고 있었다.
축제는 그렇다 치고 시위의 규모가 얼마나 심각한지, 대통령궁은 대형 철판으로 둘러쌓아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막아놓았으며, 수천 규모의 연방경찰이 소칼로를 향하는 모든 길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당시 멕시코는 여행 1주일 전인 6월 7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파르도가 선출된 상황이었다. 선거 전후로 시민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는 듯 보였다. 선거 전 공식적인 집계로 50명이 넘는 정치인이 살해되었고, 이는 군벌처럼 전국을 나누어 지배하는 카르텔의 위상이 연방정부보다 높다는 방증처럼 느껴졌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연방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납득하고도 남았다. 멕시코 혁명이후 70년이 지속된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은 2000년에 종식되었지만, 이후 다양한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은 혼란스러웠고, 다원화된 정치상황은 일부 시민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져오기 충분했다.
이런 상황이 매일매일의 시위로 이어졌고, 소칼로의 철벽이라는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소칼로의 철벽을 본 순간, 대통령궁에 위치한 디에고 리베라의 어용벽화 대작 ‘멕시코의 역사’는 보기 힘들겠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날씨도 좋았고, 멕시코 여행 첫날이라 기분은 무척 들떠있었다. 다음 주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한국이 아닌 멕시코에서 일주일을 보낸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무척이나 흡족하게 만들어줬다.
소칼로 주변에서 사진을 실컷 찍고, 우리는 <Cinco de mayo>길을 따라 멕시코 예술궁전쪽으로 이동하였다. 길 이름은 5월 5일로(路)로, 이날은 1862년 5월 5일 푸에블라 전투에서 멕시코 군이 프랑스 제국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길이다.
소칼로에서 이길을 따라 쭉 이동하면, 예술궁전과 알마에다 중앙공원이 나온다. 우리는 이 길을 지나쳐 디에고 리베라 Mural(벽화)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알마에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라는 이름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위치해 있다. 멕시코 혁명시대에 자신의 유년기를 투영한 멕시코 벽화의 걸작 중 하나이다.
인생 첫 멕시코 벽화는 벅차오르는 감동 그 자체였다. 거대한 규모와 수백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웅장한 벽화의 내용과 기백에 압도당했다. 그림을 보고 있는 지금은 6월 9일 일요일 오후 12시이다. 시간을 거슬러 혁명시기 알마에다 공원에서 ‘멕시코 혁명과 영웅들’을 직접 만나는 느낌을 받았다.
멕시코 벽화운동 3대 거장 중 하나인 디에고 리베라는 우리나라에도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디에고 리베라는 민족주의자로서, 작품 대부분에서 멕시코 원시문화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이러한 디에고 리베라의 화풍은 혁명정부의 벽화 운동 취지에 정확히 일치하였고, 그의 작품은 어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정부 혁명정부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역사와 민족에 대한 강한 애정과 희망은 독특한 그만의 화풍과 결합하여 걸작으로 평가받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