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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Jan 31. 2022

단골 카페에서는 더 이상 메뉴를 묻지 않는다.

11. 커피 수혈



  (구) 플랫 메이트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다 우연히 들른 카페 ‘lot sixtyone’는 그날 이후, 단골 카페가 되었다. 하루 일과에 ‘커피 한잔의 여유’가 포함되어 있는 나는 매일 이곳을 찾았다. 1-2평이 될까 말까 한 작은 공간 안에 주문하는 곳, 커피 만드는 곳, 커피 마시는 곳을 알차게 마련해놓았지만 나는 주로 가게 밖의 테라스 공간(이라지만 사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좌석이 편한 것도 아닌데 카페는 늘 손님들로 붐볐다. 아마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커피맛’이 그 이유지 않을까 싶다.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이 카페를 애정 하게 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늘 카페라테를 마셨다. 어떤 날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 번, 오후 산책을 하며 또 한 번 카페를 찾았다. 이렇게 매일 출석도장을 찍고 항상 같은 메뉴를 먹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모두 내게는 메뉴를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한 번은 한 아르바이트생이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몰타에 왜 왔어?”라고 두 눈을 반짝이며 물은 적이 있다. 하긴 유학생이 거의 살지 않는 동네에 매일 같이 오는 동양인 여자애가 그 흔한 문법책이나 회화책 대신 원서로 ‘어린 왕자’나 ‘이솝 우화’ 같은 책을 읽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길 법도 하다. 나는 몰타가 좋아서 휴직을 하고, 1년 간 영어공부를 하러 왔다고 했다. 오랜 시간의 궁금증이 해결되었다는 그녀의 표정은 아이처럼 해맑았다.

  어느 날에는 길거리를 걷다가 어떤 사람이 “나 너 알아, 너 그 카페 단골이잖아!”라며 말을 건 적도 있다. 그래서일까. 일주일 정도 주변 국가로 여행을 갈 때도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카페에 가서 “나 여행 가는 동안은 여기 못 와.”라며 미리 부재 신고를 하기도 했다.




  참, 원서로 책을 읽는다고 하니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하루에 고작 몇 장을 읽었을까. 우연히 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한 남자와 2개월이나 지난 뒤에 또다시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시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내 손에는 두 달 전과 같은 책이 쥐어져 있었다면 말 다 했지. 그래도 끈기 없는 내가 일 년 동안 세 권의 영어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카페 덕분이었다.

  카페에서 나는 앞서 말한 대로 주로 영어책을 읽었고 가끔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독학했다. 이곳은 분명 공부하기 편한 공간은 아니었다. 시간을 잘못 맞춰가면 땡볕 아래에 앉아야 하고 비가 오면 후다닥 짐을 챙겨 좁은 카페 안으로 대피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편한 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정도로 나는 이곳을 정말 좋아했다. 더운 여름날에는 휴대용 선풍기를 탁자에 올려두고 공부를 했고, 추운 겨울날에는 얼죽아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뜨거운 라테를 핫팩 삼아 공부를 했다.



   

  매일 카페를 방문하다 보니 카페의 여러 단골손님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고 옆 가게의 주인과도 눈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단골손님 중에는 나만큼이나 이 카페를 사랑한 일본인 친구가 있었는데 나처럼 몰타에 대한 애정 또한 상당했다. 그는 10대 때 어학연수차 방문했던 몰타를 잊지 못하고 이제는 이곳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나와 친구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몰타의 행정처리에 대한 불만부터 아시아인으로서의 타향살이에 대한 어려움까지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카페 옆에는 국제커플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다. 남편은 몰타인, 아내는 중국인이었는데 그곳의 마스코트는 그들이 키우는 시바견 구찌였다. 구찌의 존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시아인을 잘 볼 수 없는 도시에서 일본인 친구와 중국인 주인의 존재는 나의 발걸음을 매일 그 골목으로 향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문득 카페 골목에서 풍기던 커피 향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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