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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Feb 02. 2022

물보다 술이 싸서 그랬다고 변명을 해봅니다.

13. 몰타에서 술과 함께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게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타에서는 가끔씩 알딸딸해지고 싶었다. 취기를 빌려한다는 행동이 고작해야 “I’m sober.(나 술 안 취했어.)”, “I’m tipsy.(나 술 조금 취했어.)”를 무한 반복하며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것뿐이 었지만, 몰타에서는 술 마시는 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내게는 나름의 이유들이 존재했다.

  먼저 외식을 할 때마다 물을 사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물보다 술이 싸게 느껴지니까(변명) 물 대신 술을 주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합리화)



 

  우리나라에 카스와 하이트가 있듯 몰타에는 ‘cisk’라는 이름을 가진 몰타산 맥주가 있다. 시스크 라거, 시스크 엑셀, 시스크 엑스포트의 기본 맛 외에도 레몬맛, 생강 라임맛, 베리맛과 같은 과일향이 첨가된 제품이 다양하게 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좋아했던 과일향 맥주는 따로 있었다. 바로 ‘rekordering’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웨덴 맥주였다. 진짜 술꾼들에겐 맥주라기보다 술향이 첨가된 과일 음료처럼 느껴질 테지만, 내게는 술기운 내고 싶을 때 부담 없이 마시게 되는 NO.1 알코올이었다.

  홈파티에 초대받았을 때는 늘 와인을 사 가지고 갔다. 종류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한국 가격의 반의 반값 정도였기에 어떤 것을 골라도 부담이 없었다. 싼 가격 덕분에 와인을 활용한 샹그리아나 뱅쇼도 자주 만들어 먹었다. 한편 옐루(한국인 동생의 애칭)와 펍에 갈 때면 늘 마시던 술이 있었는데 그 시작은 이랬다. 둘 다 술에 대해 잘 몰라서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마시나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한 남자가 검은색 술이 담긴 술잔을 손에 한가득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저거 마시자!”라고 말했다. 시끄러운 주변 상황 때문에 “그게 뭐예요?”라고 그에게 여러 번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뉴 이름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바텐더에게 스피드 퀴즈 문제를 내듯 술에 대해 한참을 설명을 했고, 결국에는 그것이 보드카와 콜라를 섞은 ‘보드 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도 안 좋아하고 탄산음료도 안 좋아하는데 보드 콕은 왜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다.



  


  슬리에마에 위치한 아시아 마트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발견했던 날, 하루라도 빨리 나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홈파티를 하는 날, 막걸리를 꺼내 들며 한국의 쌀와인이라고 소개했다. 달콤한 맛과 고소한 향을 지닌 막걸리를 친구들은 좋아해 주었다. 이어서 한국산 소주에 몰타산 맥주를 섞어 소맥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는데 샴페인 같다며 신기해했다.

  나의 한국 술 소개에 감명을 받았는지 페루에서 온 친구는 며칠 뒤에 페루의 전통 맥주인 ‘cusqueña’를 선물해주었다. 한국음식과 페루 맥주를 몰타에서 마셔본 경험이라니 가만히 앉아서 세 대륙을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주량도 모를 정도로 술을 잘 마시지 않던 내가 몰타에서 자발적 술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몰타의 풍경이 안주가 되어 나를 술집으로 이끌기도 했다. 얼마 전에 읽은 문진영 작가의 ‘두 개의 방’에는 ‘술 산책’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몰타에 있는 동안 나는 술 산책 마니아였던 것 같다.

 술 산책의 목적지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곳은  ‘cafe society’였다.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가게 앞 계단 앉아 쓰리 시티즈 쪽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일분일초에 따라 하늘의 색은 변했다. 나는 하늘의 분홍빛과 바다의 푸른빛 사이의 보랏빛이 참 좋았다.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었다. 이곳에서 내가 주로 마시던 칵테일은 ‘basil fawlty’였는데 오싫모(오이 싫어하는 모임) 지지파인데도 불구하고 오이가 들어간 이 칵테일을 제일 좋아했다.



  


  친구들과 모여 시끌벅적하게 마시던 날, 둘이서 담소를 나누며 마시던 밤만큼이나 집에서 혼술도 즐겼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홀짝이며 괜히 분위기를 잡곤 했다. 취중진담이라든지 취중고백이라는 노래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지금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술을 마시는 날은 연중행사일과도 같지만, 몰타에서 좋은 사람들과 진솔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할 수 있었던 건 술 향기의 공이 컸다고 술알못이자 알쓰인 내가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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