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신 Feb 03. 2022

일단 책 좀 덮고 공부하러 갔다 올게요.

14. 나의 영어 공부법

  

  한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만나면 늘 긴장되었다. 학교 영어, 학원 영어를 거쳐 성인이 되어서 스터디까지 했는데도 영어에 자신이 없다니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몰타행을 결심했을 때, 책에서만 영어를 배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최대한 많은 외국인과 만나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리라 결심했다.


   단계는 한국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나를 놓아두 한국인 모임보다는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 친구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몰타에는 남미에서  친구들이 많았는데 주로 콜롬비아인들이었고, 나머지는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 페루 등에서  친구들이었다. 또한 가까운 유럽인 헝가리,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친구들도 있었다. 나이와 외모, 자라온 환경이 달랐지만, 영어를 배우러 몰타에 왔다는 하나의 공통점은 우리 사이의 유대감 형성에  역할을 했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하나같이 음악을 사랑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만 있으면 밤새 춤을 추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게 선곡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강남 스타일’이나 ‘범 내려온다’ 또는 ‘bts의 노래’를 골랐다. 음악을 사랑하고 흥이라면 빠지지 않는 나였기에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잘 어울려 놀았다. 외국인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깨달은 것은 ‘문법’보다는 ‘어휘’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유창하게 이야기를 했을 때 전달력이 높았다.


  첫 만남에 나이를 묻지 않으니 나이를 추측하는 것이 하나의 게임이 되었던 날도 있다. 동양인의 나이를 어리게 보는 시선 때문에 동안처럼 생각해주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친밀한 사이의 친구가 될 수 있음에 놀라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인 친구들과는 친분의 정도와 상관없이 쉽게 포옹을 하는데 정작 말이 통하는 한국인을 만나면 자연스레 나이를 묻고 조심스레 정중한 인사를 나누니 말이다.


  각자 전통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은 적도 많다. 태국인 친구 집에 초대받았을 때는 친구가 그린 카레와 새우요리를 해주었고, 한국인 동생과 나는 떡볶이를 만들었다. 남미 친구들이 많다 보니 그들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할머니 세대에서부터 전해오는 비법으로 만든 나쵸, 아르헨티나의 엠빠나다, 페루식 감자요리 등을 나눠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기도 하고 함께 통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고 보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상대를 생각하며 정성 들여 만든 요리에 그날의 추억이 더해지니 그 맛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날이 좋을 때는 바닷가에서 바비큐를 했다. 미리 준비한 고기와 채소꼬치를 그릴에 구워 먹으며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의 패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다. 그리고   새에 높아진 나라의 위상 덕분에 한국 여행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직업이 무엇인지 맞춰보라고  적도 있다는데 친구들은 ‘승무원’, ‘패션회사 근무’, ‘유치원 선생님등으로 추측했다. 신기하게도  번쯤은  장래희망 목록에 있었던 직업들이었다.


  바다에서 요가를 한 날도 있다. 폴란드에서 온 강사님과 아침 8시에 만나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고 마침내 발레타 쪽 바다를 바라보며 운동을 시작했다. 요가를 배운 적이 있어서 운동 능력은 걱정이 안 됐지만, 혹여나 잘 못 알아듣고 긴장한 채, 동작만 베끼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선생님도 원어민이 아니었기에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설명해주셨다. 강사님 덕분에 긴장을 풀고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영어를 배우는 일보다 영어를 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았다. 진짜 공부는  밖에 있었다.  모국어가 같지 않으니 영어만이 내가 좋아하는 일(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운동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을 하기 위한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강한 학습 동기가 되었다. 현재는 대부분 몰타가 아닌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다양한 국적의 영어 학습자 친구들은 나와는 달리 영어를 쓰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전 14화 태닝 크림은 있어도 톤업 크림은 없는데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