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 번의 헤나, 두 번의 탈색, 세 번의 네일
몇 년 전부터 휘황찬란한 색깔로 염색을 하고 싶었는데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몰타에서는 한 번쯤 파격적인 변신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파격적인 변신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날동안 무슨 색으로 염색을 할지 고민하던 나는 결국 몰타의 바다색이 떠오르는 파란색으로 결정하고 한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미용실 의자에 앉자마자 디자이너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 색상으로 염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을 살펴보던 디자이너는 탈색을 두 번 정도 하고 색을 올려야 원하는 색상이 나온다고 했다.(참고로 이곳은 기장 추가 비용이 없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염색 비용이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탈색 두 번’이라는 그녀의 말에 자동으로 “제 두피가 예민해요.”라는 나의 답변이 튀어나왔고, 우리는 결국 두피에서 1-2cm 간격을 두고 탈색 약을 바르는 선에서 합의(?)했다. 한 번 탈색 약을 바르고 나니 머리가 개나리색으로 변했다. 한 번 더 탈색을 하니 레몬빛이 되었다. 레몬빛 머리에 염색약을 올린 후에야 머리카락이 푸르게 변했다.
이 후로 한국에서는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미용실에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파란 머리의 색이 다해 노란 머리가 되자, 쨍한 보라색으로 염색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 색이 점점 연해지며 분홍색을 거쳐 또다시 노랗게 변하자, 주황빛을 입혔다. 두 번의 탈색을 거친 머리는 다양한 색을 거쳐 결국 흑발에 정착했다.
흑발로 염색을 하는 날에 머리도 같이 자르기로 했는데 어라? 커트를 하기 전에 염색약을 먼저 바르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자를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는 것에 당황해하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No, problem”이라고 대답하는 디자이너, 몰타는 염색약과 초밥 간장을 아끼지 않는 나라였다.
미용실의 한 켠에서는 네일숍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아트는 안 되고 오로지 손톱에 색만 입힐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안 해본 네일아트를 몰타에서 하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기분이 묘했던 것은 이 미용실의 알 수 없는 시스템 때문이기도 했다. 미용실의 1층에는 메이크업샵이 있었는데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 헤어 시술비용만큼의 화장품을 무료로 제공했다. 처음에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거 아니야?’ 속으로 생각하며 귀를 활짝 연 채, 설명을 듣고 눈을 번쩍 뜨며 영수증을 확인했는데 말 그대로 무료 제공이었다. 분명 나에게 이유를 설명을 해줬을 텐데 그때까지만 해도 지문이 긴 영어 듣기는 버거울 때라 듣고 싶은 부분만 들은 것 같다.
bts의 자체 예능 프로그램의 ‘몰타 여행 편’에서 뷔가 헤나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몰타에 가면 꼭 해봐야지 생각했었다. 한 여름날, 옐루(한국인 동생의 애칭)와 같이 하려고 거리의 헤나 이스트를 찾았는데 꼭 혼자 있을 때만 노점상이 열려 있었다. 한 날은 오늘 꼭 하고 싶은 마음에 운영 중인 일반 타투샵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물어봤었는데 그들은 진짜 타투만을 한다고 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며칠이 지나고 산책을 하다가 헤나 노점상을 발견한 나는 곧장 옐루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팔에 문양을 새겨 넣었다.(일주일 만에 사라졌지만)
어느 누구는 몰타에 가서 안 하던 탈선을 하고 그러냐 하겠지만, 머리가 노래지고 팔에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딱히 나의 말과 행동이 변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탈색을 하고 헤나를 했던 것은 불량스러워 보이고 싶다든지 쎄 보이고 싶다든지와 같은 이미지 변화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금기시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도전 의식이 활활 타오르다 몰타에서 펑하고 터진 게 아닌가 싶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나는 확실히 ‘청 개구리과’인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