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몰타의 교통수단(feat. 고조 섬 여행)
몰타에는 지하철이 없다. 그럼 유일한 대중교통이 버스인가? 그건 아니다. 어떠한 배는 대중교통에 포함된다. 배는 수도인 발레타를 기준으로 동쪽, 서쪽 지역으로 연결해주는 페리(시내 이동용)와 본섬인 몰타섬에서 고조 섬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람선(관광용)으로 나뉜다.
나는 발레타에 살았는데 번화가인 슬리 에마로 이동할 때마다 페리를 탔다. 버스로는 20분 정도 걸릴 거리를 단 5분 만에 갈 수 있는 데다가 페리 정거장까지의 풍경이 아주 낭만적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문을 열고 나와 57걸음 정도 걸으면 몰타의 북쪽 바다가 나오는데 나는 이 바다를 끼고 페리 정거장으로 향하던 해 질 녘을 참 애정 했다.
페리는 30분의 배차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노력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엄청 정확하게 출발 시간을 지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긋한 몰타의 분위기에 동화가 되어 그런지 ‘때가 되면 어련히 출발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동안 여유롭게 한번 더 하늘을 감상하곤 했다.
페리에는 회사 로고가 새겨진 흰색 폴로셔츠와 남색 반바지를 유니폼으로 입은 승무원과 선장들이 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혹여나 물에 빠지면 구해주시려나? 수영은 당연히 잘하겠지?’라는 엉터리 상상을 하며 인사를 열심히 나눴다.
앞서 내가 어떠한 배를 대중교통이라고 칭한 이유는 교통카드로 요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온 나는 유학원의 도움을 받아 미리 주황색의 학생 교통 카드를 받았다. 현금으로 지불하면 편도 1.5유로지만, 교통 카드로 결제하면 반값인 0.75유로에 페리를 탈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번화가로 갈 때 페리를 탔지만, 종종 산책 삼아 반대쪽 동네인 쓰리 시티즈로 가기도 했다. 쓰리 시티즈는 코스피쿠아, 센 글레아, 빅토리오사 세 도시를 일컫는데 엄청 한적하고 조용하고 깔끔한 동네라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가서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곤 했다.
몰타는 몰타 본섬, 고조 섬, 코미노 섬 세 가지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몰타의 사람들을 ‘몰티즈’라고 칭하듯이 고조 사람들을 ‘고지탄’으로 따로 부른다고 한다. 몰타에 속해있지만 고조인들은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몰타에 살면서 고조는 친구들과 한번, 혼자서 한번 총 두 번을 다녀왔다. 처음으로 갔을 때는 차를 빌려서 몰타 본섬의 동쪽 끝인 치케와 항구에서 유람선을 탔다. 차를 실을 수 있는 아주 큰 배는 어릴 때 이후로 처음 타본 것 같다. 그 전날 밤을 지새운 터라 마음과 달리 비몽사몽 상태였다. 아마 이날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너희끼리 다녀와, 난 괜찮아.”이지 않았을까?
차로 고조 섬 곳곳을 돌며 관광지를 둘러봤다.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바다에 주저 없이 몸을 던지는 친구들, 그리고 그걸 바라만 보고 있는 두 사람. 몰타에서 살면서 본 사람들 중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한국인인 나와 옐루 둘 뿐이었다. 성격이 급하고 두려움이 없고 도전을 즐기는 나지만, 주기별로 언급만 할 뿐 실제 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수영이요, 하나는 운전이다. 바다를 그리 좋아하면서 수영을 못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데 운전을 못한다. 내가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죽 비현실 적었는지 한 번은 나의 말에 “어쩌다 취소되었느냐?”라고 답하는 지인도 있었다.
몇 달이 지나고 혼자만의 고조 여행을 마치고 다시 유람선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내 휴게실에서 마주친 한 할아버지께서 다른 방향의 버스를 타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몰타 본섬으로 돌아가시는 게 아닌가? 버스 잘못 타시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내적으로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데 다행히 버스기사님의 도움으로 나와 같은 버스를 제대로 타셨다. 그리고 본섬으로 돌아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또다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오늘 자주 마주치는군요.”라고 말을 거셨다. 할아버지와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몰타에 오게 되었는지 고조는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나의 인생을 응원하시며 떠나셨다.
꽃집 할아버지도 그렇고 내가 할아버지들에게 마음을 쓰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가끔씩 옛날 앨범을 보다 보면 아장아장 걸을 때나 멋모르고 까불거리던 때의 사진 속에 할아버지와 함께한 장면이 많았다. 내가 직장인이 되고 할아버지께서는 기력이 쇠하셔서 오랜 시간 병원에 계셨는데 병문안을 갈 때마다 점점 몸은 말라가고 정신도 흐릿해져 가셨다. 급기야는 자식들도 제대로 못 알아보셨는데 내게는 항상 손을 꼭 잡으며 ‘신 선생’으로 시작하는 덕담을 해주셨던 모습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