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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Jan 30. 2022

나한테 밥 얻어먹은 고양이는 앞발을 들어주겠니?

10. 내가 집사라니


  



  몰타에는 길고양이가 정말 많다. 심지어 아주 큰 고양이 동상이 있는 공원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길고양이를 잘 챙겨준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아마 ‘고양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 조사를 하면 터키와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 싶다.





  나비와의 만남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내가 이사  것이 소문이 났는지 며칠 동안 오후만 되면  고양이가 우리  앞을 서성였다. 회색과 갈색의 조화가 예쁜 고양이었다. 보자마자 나는 나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비는 개냥이는 아닌데 나를 따랐다. 나를 집사와 호구 중간쯤으로 인식한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비의 그런 태도가 좋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장을  때마다 나비의 사료나 간식을 샀다.





  나비는 꽤나 입이 고급이었다. 싼 통조림은 한가득 남기고 초코 시리얼처럼 생긴 비싼 사료는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리고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어디서 자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지만, 길고양이의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 날에는 나비가 많이 걱정되었다.





  내가 집을 비웠을 때(밥을 주지 못했을 때)는 집 앞을 지키고 있기도 했다. 애완묘도 아닌데 알 수 없는 책임감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쳐다보는 건데 마치 ‘밥 안 주고 어딜 싸돌아 다니냐.’라고 꾸짖는 것만 같았다.

  나비는 여느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츄르에 환장했다. 평소에는 나와 1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식사를 하면서 츄르를 먹을 때는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동그란 눈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나비는 가끔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나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나는 나비가 낮에만 우리 집 근처를 서성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밤, 무심코 2층 창문으로 현관 앞을 보게 되었는데 나비가 한참을 우리 집 앞에 누워있다가 자리를 뜨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로 밤에도 나비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싶어 이따금씩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에 문을 열었더니 나비가 친구를 데려왔다. 마치 ‘내 단짝이니 얘도 잘 챙겨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애완묘처럼 챙기던 나비지만, 동물에 대해 무지한 터라 나비의 성별도 몰랐다. 당연히 나이도 몰랐다. 확실히 아는 것은 생김새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크나큰 착각이었다. 평소에 가지 않던 동네 골목을 산책하던 날이었다. 고양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곧이어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내 시야에 나비가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였기 때문이다. ‘나비는 쌍둥이였던 걸까? 두 마리가 번갈아 우리 집에 왔던 걸까?’ 말도 못 하는 고양이 뒤를 졸졸 쫓아가며 누가 나비냐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해줄 리가 없으므로 나는 둘 중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한 마리가 나비일 거라 추측하고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과 비교했다. 귀의 모양, 얼굴의 크기, 무늬의 형태 등을 맞춰보는데 갑자기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싶었다. 누가 왔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앞에서 만나면 둘 중 누가 됐든 나비는 나비니까 말이다.



  발레타를 떠나는 날은 나비와의 이별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심 나비가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 그래야 그것이 핑계가 되어 더 늦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비는 늘 그랬던 대로 바로 내 앞에 나타났다. 아쉬운 나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준비한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나비는 행복해 보였다.(그랬다고 믿고 싶다.) 자리를 뜨며 한걸음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며 나비를 눈에 가득 담았다. 내가 떠난 지금, 우리 나비는 누가 주는 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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